▲ 사철나무.

경계를 나눌 때 흔히 울타리를 친다. 예전에는 철사, 나무토막, 돌 등으로 울타리를 만드는 경우가 많았는데 요즘엔 나무를 심는다. 대표적인 울타리 나무로 사철나무가 있다. 집과 밭의 경계, 집과 길의 경계, 차도와 인도의 경계 등에 심겨진 나무는 십중팔구는 사철나무이다. 

사철나무는 우리와 친근한 나무이고 우리 생활 가까이에 있는 나무이다. 삐죽삐죽 가지와 잎을 지 멋대로 뻗치기도 하고, 부지런한 주인을 만나 잘 다듬어진 채 한껏 멋을 내기도 한다. 이렇듯 사철나무는 울타리를 치며 경계 나누기를 좋아하는 사람들 때문에 주변에서 흔하게 볼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알고 보면 소금바람에도 강하여 바닷가에서도 잘 자라는 나무이다. 독도에 100년 된 고목 사철나무가 있다. 그것도 울릉도에서 왔을 걸로 짐작되는 토종 사철나무이다. 떼까치나 지빠귀 종류의 새가 사철나무 열매를 뱃속에 담고 잠시 독도에서 쉬어갈 때, 그들이 쏟아놓은 배설물이 시작이었으리라 본다. 독도에는 독도의 짠물과 바람, 가뭄과 홍수를 견디며 체득한 강한 생명력에 사철나무의 본성까지 더해져 잘 자라준 10그루의 사철나무가 있다. 현재는 보호수로 지정받아 독도를 지키고 있다. 

사철나무는 사계절 내내 푸른 데서 이름이 유래되었다. 그러나 한번 돋은 잎이 그대로 있는 것은 아니고 우리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조금씩 잎을 바꿔가기 때문에 사철 푸르게 보이는 것뿐이다. 소나무를 비롯한 다른 상록수들도 마찬가지이다. 변함이 없다는 것은 처음과 똑 같다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흐르면서 한 뼘 한 뼘 성장하여 오래도록 푸름을 잃지 않고 유지하는 게 아닐까 싶다.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처음의 겸손하고 따뜻한 본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사철나무의 다른 이름에는 개동굴나무, 겨우살이나무, 동청목(冬靑木)이 있다.

예나 지금이나 사철나무의 대표적인 쓰임새는 울타리다. 동시에 촘촘한 가지 뻗음과 가죽처럼 두꺼운 잎을 달고 있어서 가리개의 기능도 있다. 조선시대 전통 양반 가옥의 안채와 사랑채 사이에는 손님이 왔을 때 안채가 바로 보이지 않게 취병(翠屛)이라는 가리개 시설을 만들었다. 이 때 돌담보다는 사철나무로 만들어 울타리와 가리개의 기능을 했다. 때로는 대나무로 담장의 뼈대를 만들고 안에다 줄사철나무를 올리기도 했는데, 김홍도가 그린 <후원유연(後園遊宴)> 그림에서 확인할 수 있다.

사철나무는 6~7월에 황록색의 자잘한 꽃이 모여서 달리고, 10월에 둥글고 붉게 익은 열매가 달린다. 녹색이던 열매는 네 갈래로 갈라지면서 붉은 속살을 드러내고 그 속에 흰색 씨를 품고 있다. 열매 안에 속살이 있고 그 안에 씨를 감추고 있는 특이한 구조이다. 이 붉은 열매는 어릴 적 소꿉놀이의 단골 메뉴였다. 며칠 전에 본 사철나무 열매는 굳게 입을 닫고 녹색을 띠고 있었다. 하지만 곧 가을 햇살에 붉게 익어갈 것이다. 사철나무 잎이 겨울에도 푸른 이유는 다른 나무의 잎보다 반질반질하고 두꺼운 층이 있어서 물기가 날아가는 것을 막아주기 때문이다. 동백나무의 잎처럼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항상 푸른 잎만을 가지고 사는 건 아니어서, 가을에는 약간 붉은 빛도 돌고, 겨울에는 녹색이 옅어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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