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선한의 영화이야기

▲ 영화 포스터

유사 이래로 가장 사랑받는 이야기는 누구나 알 법한 ‘빤한 이야기’다. 불세출의 영웅담도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과 이별도 따지고 보면 거기서 거기다. 글재주가 없어서 일기장에 그럭저럭 대충 썼느냐, 셰익스피어 같은 불세출의 문장가가 썼느냐의 차이일 뿐. 첫사랑 이야기도 마찬가지라서 이미 한껏 우릴 만큼 우려내 더 이상 효용가치가 없을 것 같은데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재생산된다. 관건은 누가 어떤 방식으로 이야기를 푸느냐다.
 
로맨스 영화 <너의 결혼식>은 느낌 그대로 첫사랑 소재의 영화다. 작품을 뜯어보기 전에 우선 대작들 틈바구니에서 멀미하기 직전 얼굴을 내민 앙증맞은(?) 규모의 영화라 내심 반갑다. 오랜만의 로맨스 장르다 보니 로맨스 멜로팬들 입장에서는 가뭄 끝의 단비라고 할 수도 있겠다. 다만 앞서 언급한 것처럼 이 빤한 소재를 어떤 방식으로 풀었느냐가 문제다.

고교시절 처음 만난 승희(박보영)와 우연(김영광)은 ‘예술로 빗나가는 타이밍’ 속에서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며 어른이 된다. 여느 첫사랑이 그렇듯 함께 한 시공간은 추억이 되고 서로 다른 시공간은 애틋한 그리움으로 남지만 질척대거나 집착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시간의 가치를 받아들이는 우연의 태도는 성숙하고 아름답다. 그래서 이 영화는 성장영화로도 손색이 없다. 깔끔한 연출과 문득 문득 기억의 한켠을 소환하는 에피소드는 공감지수를 높이기에 충분하다.

사소하고 유치한 궁금증일 수 있지만 김영광과 박보영의 키 차이가 영화 속에서 어떻게 극복 혹은 묘사 되었을까가 몹시 궁금했는데 결론은 성공적이다. 박보영은 사랑스럽기 그지없고 김영광은 지금까지 보아온 어느 역할보다 멋지다. 판을 잘 깔아준 감독의 섬세한 연출력이 돋보이는 지점이다. 수시로 웃음을 유발하는 조연들의 포지션도 깔끔하다. <너의 결혼식>은 진부한 소재를 나만의 방식으로 이야기한다면 언제, 어디서나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음을 보여준다.

온갖 기록을 갈아치우던 111년 만의 폭염이 한풀 꺾이고 나니 여기저기에서 가을을 말하기 시작한다. 사색과 낭만의 계절이라는 가을에 가장 어울리는 영화는 누가 뭐라고 해도 로맨스이며, 슬슬 기지개를 켜는 이 가을에 어울리는 깔끔하고 예쁜 영화가 보고 싶다면 <너의 결혼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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