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아열대작물, 한반도 미래 먹거리 될까?

▲ 지구온난화에 따른 한반도 기후변화가 빠르게 진행되는 가운데 아열대농업에 관한 국가와 지방자치단체 차원의 다양한 연구와 지원 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사진은 전남농업기술원이 보유한 아열대식물원의 실내 전경이다.

점점 더워지는 지구와 한반도. 특히 2018년은 최악의 폭염을 맞으며 ‘지구온난화’ 위기를 실감하는 한 해를 보내고 있다. 이런 가운데 아열대작물에 쏠리는 관심이 각별하다. 국가 차원에선 기후변화에 따른 농업환경의 변화를 신경 쓰지 않을 수 없고, 농민들 입장에선 새로운 소득 작물 발굴에 기대를 거는 모습. 그러나 한반도의 기온 상승이 곧 아열대농업의 성공을 보장하진 않는다는 게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겨울은 여전히 춥고, 이를 극복하며 생산한 열대과일은 비싸며, 채소류는 아직 우리의 입맛에 낯설다. 이에 뉴스사천은 우리나라 아열대작물 재배 현황과 개선점을 살피면서 미래 가능성을 엿보는 기회를 4회에 걸쳐 갖는다.

‘아열대 1번지’ 온난화대응농업연구소

우리나라 아열대농업에 관한 연구와 지원은 농촌진흥청이 맡고 있다. 본청에서 사업 전체를 총괄한다면 소속 기구인 국립농업과학원과 국립원예특작과학원은 연구 활동에 전념한다. 전자가 기후변화와 관련한 기초연구를 맡고, 후자가 기후와 환경 변화에 따른 대응기술과 작물 개발 업무를 맡는다. 그 가운데서도 원예특작과학원 부설 온난화대응농업연구소가 ‘아열대농업 연구 1번지’라 할 수 있다.

제주시 오등동에 있는 온난화대응농업연구소는 아열대채소연구실과 아열대과수연구실 등을 갖추고서, 온난화에 따라 변화하는 미래 재배환경에 적합한 새로운 작물 개발을 목표로 다양한 아열대 자원에 대한 수집‧평가‧보존‧적응연구를 하고 있다. 구체적 임무로는 △아열대작물의 기후 적응성 평가 및 재배기술에 관한 시험‧연구 △온난화 대응 원예‧특작 영향평가에 관한 시험‧연구 △온난화 대응 원예‧특작 병충해 영향평가 및 관리에 관한 시험‧연구 등이 있다.

▲ 온난화대응농업연구소의 김성철 연구관이 연구소 내 주요 연구시설 중 하나인 온도구배하우스를 설명하고 있다. 온도구배하우스란 입구는 바깥 온도와 비슷하게, 안쪽으로 갈수록 온도가 일정하게 오르도록 해놓은 시설로서 온도에 따라 작물의 생육 정도가 다르게 나타난다. 연구소는 여기서 기후변화가 작물 생산에 미치는 영향을 살핀다.

무더위가 한창 기승을 부리던 지난 7월 20일 이 연구소를 방문해 연구시설을 둘러보고, 아열대농업의 현재와 미래에 관해 들었다. 안내를 맡은 이는 이 분야에서 20년 넘게 일한다는 김성철 농업연구관이었다. 그의 첫마디는 강렬했다.

“업무상 만나는 사람들 중에는 마치 아열대작물이 세상을 바꿀 것처럼 여기는 사람들이 있어요. 하지만 제가 볼 땐 안 그래요. 여름엔 34~35℃를 넘어가면 고온피해가 발생하고, 겨울엔 추위가 여전해서 한파 피해가 걱정이죠. 농사가 아슬아슬한 겁니다. 당분간은 그냥 수입농산물 속에 틈새시장을 공략하는 정도로 여기는 게 맞을 것 같아요.”

그는 이 얘기와 함께 지난해 제주에서 이상 한파로 열대과일 농사를 망친 한 사례를 소개했다. 채소에 비해 과수는 오랜 기간 공을 들여야 수확에 이르고, 이후로도 관리가 잘 되어야 하지만 어쩌다 찾아오는 이상 한파에 몇 년 간의 노력이 허사가 될 수 있음을 경고함이다. 김 연구관은 얘기를 이었다.

“다만 우리는 돈이 되든 안 되든 연구를 해야 해요. 우리 환경이 계속 변하고 있으니까 미래를 대비해야죠. 환경이 바뀌면 사람 몸도 바뀝니다. 땀을 더 흘린다든지요. 그럼 찾는 음식도 바뀌겠죠. 우리가 동남아에 가서 사과나 배를 찾진 않잖아요?”

그는 온난화대응연구소의 역할이 여기에 있다고 했다. 새로운 작물을 들여와 테스트 해보고, 소비시장까지 생각하는 1차 검증을 한다는 거다. 그러니 10년이나 20년 뒤의 우리나라 농업에 대비한 연구를 하는 셈이다. 기상청과 협력해 미래의 작물지도를 그리고, 온도가 1℃ 올라갈 때마다 작물과 병해충은 어떤 영향을 받는지 연구한다.

 

▲ 온난화대응농업연구소가 지구온난화에 대비해 진행 중인 '온도에 따른 고추의 생육 및 광합성 반응 연구' 시설 모습.

아열대농업에 힘 쏟는 ‘전남’을 가다

농촌진흥청과 부설기관들이 큰 그림으로 아열대농업을 연구한다면 광역자치단체 단위의 농업기술원은 지자체 실정에 맞는 작물 연구와 기술 지원을 맡는다. 각종 사업 지원으로 농민들과 현장에서 만나는 단위는 기초자치단체와 시‧군의 농업기술센터이다.

농촌진흥청이 2017년 말에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진흥청 선발 주요 아열대작물 20종의 재배현황은 1725농가에 면적 354.2ha 규모다. 이 가운데 공심채, 롱빈 등 12종의 주요 채소는 1360농가가 245ha 규모로 재배하고 있다. 망고, 백향과(=패션프루트) 등 주요 과수 8종(바나나 제외)의 재배에는 109.2ha에 365농가가 참여하고 있다. 이를 지자체별로 보면, 과수 부문은 제주가 규모 면에서 월등히 앞선다. 재배면적이 41.4ha로 전국의 38%를 차지한다. 반면 채소는 전남 81.9ha, 전북 81.2ha로 엇비슷한 가운데 전국 최다 재배면적을 자랑한다.

이들 중 뉴스사천이 주목한 곳은 전남이다. 전남농업기술원은 1994년부터 과수, 2009년부터 채소 연구를 시작하는 등 아열대작물 연구에 발 빠르게 대응해 왔다. 이를 보여주듯 전남농기원 입구에는 아열대식물원이 조성돼 이색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전남농기원 원예연구소에서 최소의 난방으로 고품질의 작물 생산을 연구하는 조윤섭 농업연구관은 아열대작물 재배에 따른 현실적 고민들을 털어놨다.

“아열대작물의 다양한 기능성에 주목하는 농민들도 있지만 다른 작물에 비하면 생산농가가 턱없이 적다보니 관련 연구가 부족한 게 사실이다. 농민들은 음료나 잼 등 1차 가공식품 생산에 머물고 있다. 가온시설이나 바람막이시설 등 초기 투자비용이 큰 만큼 농민들은 아열대농업 부문에도 국가 차원의 정책자금 지원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일종의 모델케이스가 필요하다는 얘긴데, 자칫 특혜시비에 휘말릴 수 있어 이래저래 조심스러운 게 현실이다.”

▲ 전남농업기술원에 있는 아열대식물원.

조 연구관은 아열대작물 재배의 핵심 과제로 ‘겨울철 난방 해결’을 꼽았다. 이에 최근 그의 연구주제도 ‘영농형 태양광 설비’이다.

“태양광 판넬이 다 덮어버리면 작물이 자랄 수 없겠지만 그늘이 30% 정도만 되도 80%의 작물 수확이 가능하다. 따라서 아열대농업에도 영농형 태양광을 접목할 필요가 있다. 적당한 그늘은 여름철 작업환경 면에서도 나쁘지 않다. 유익한 성과를 내고 싶다.”

전남의 경우 농기원이 아닌 기초단체 차원의 아열대작물 연구도 활발한 편이다. 대표적인 곳이 고흥군이다. 고흥군 농업기술센터는 대규모 시험장을 갖추고 다양한 아열대작물 재배기술을 연구하고 있다. 연구 실적도 인정받아 2016년엔 국비 지원으로 아열대농업관을 건립하기도 했다.

고흥군이 주목하는 아열대작물은 커피와 올리브다. 그 중 커피의 경우 ‘고흥 커피 향토산업발전 장기 로드맵 구축 연구용역’에 이어 ‘고흥 로컬커피 융복합산업화 사업’을 추진하면서 상당한 성과를 내고 있다. 특히 6차 산업과 연계해 시설하우스, 가온시설, 체험장 등을 아열대농업 부문에 지원하고 있다. 고흥군농업기술센터 이용구 작목연구담당은 아열대농업에 대한 전망을 밝게 봤다.

“기후가 변하고 음식문화도 바뀌니까 전망은 어느 정도 있다고 봐요. 모든 아열대작물을 수입할 순 없을 거니까 제외 품목이나 가격 면에서 경쟁력 있는 작물을 찾아야죠. 한반도에 가장 적합한 품종을 찾아 고급화 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봅니다.”

▲ 고흥군농업기술센터 내 커피나무 재배 시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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