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포스터.

일전에도 언급한 바 있지만 지구상 유일한 분단국가라는 한반도의 상황은 첩보관련 저작물 또는 영화를 만들기에 최적이다. 그러나 마찬가지로 분단국가라는 특수상황 때문에 자유로운 저작물 또는 작품을 만들기 힘들다. 그 뒷감당을 어떻게 하랴. 다행인지 불행인지 정치적 표현이 자유로운 시기를 만나 <공작>이 제작되고 개봉했다. 당연하지만 영화로서 접근하기 보다는 선전 또는 선동도구로 바라보려는 시선도 있다. 물론 전적으로 관객의 몫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다. 남파간첩이 있다면 북파간첩도 있었을 것이다. 은밀하게 숨겨졌어야 할 ‘흑금성 사건’은 씁쓸하고도 어처구니없게도 정치적 헤게모니 다툼을 하던 중 전모가 드러났다. 국가의 발전과 국민의 안위를 도모해야 할 정치집단은 어느 새 이익집단으로 변모해 아귀다툼을 벌인다. 그 바람에 대한민국 첩보 역사상 가장 성공적이었던 대북 공작원 ‘흑금성’은 신념과 상관없이 부유하는 인물이 되었다. 재담꾼 윤종빈 감독이 현미경을 대고 들여다 본 지점은 바로 여기다. 국가권력 또는 정치권력에 의해 소모된 개인의 삶 말이다.

흔히 현실보다 더한 영화는 없다고 한다. 이 말의 신뢰성은 503호의 국정농단 사건으로 충분히 증명되었다. 덕분에 90년대 긴가민가했던 사건들과 선거철만 되면 불어 닥친 북풍논란도 냉정하게 들여다볼 수 있게 되었다. <공작>은 정치적 격랑이 넘실대던 그 시절에 개인의 선택과 신념과는 별개로 어쩔 수 없이 소용돌이에 휘말리는 두 사람에 관한 영화다. 사실 이런 정도는 헐리웃을 비롯한 기존 영화의 소재로도 많이 활용이 되었다. 다만 그간의 냉전시대의 영화들은 지나치게 뜨겁거나 지나치게 차갑거나 어느 한쪽이 강조되다보니 희화화되는 경향성마저 나타났다. 이런 점에서 <공작>도 큰 차이는 없다고 하겠으나, 지금까지 등장한 한국 첩보영화와는 분명히 다른 지점에 서있다.

<본 시리즈>처럼 현란한 액션이 등장하지 않음에도 어깨가 무거울 정도로 속도감이 느껴지고, 복선이나 반전이 기본인양 하는 요즘 첩보영화의 클리셰에서도 얽매이지 않고 벗어났다. 배우들의 대사와 심리적 묘사, 장면에 어울리는 미장센도 훌륭하지만, 이 모든 것을 빛나게 하는 것은 배우들의 연기가 더욱 돋보이도록 만드는 섬세한 연출력이다. 젊은 감독이 보여주는 패기보다는 네 편의 장편을 성공적으로 연출한 자의 노련미가 느껴진다. 이제 마흔줄에 접어드는 윤종빈 감독, 미혹되지 않고 제 갈길 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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