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추나무.

절기상 입추(立秋)가 지나니 귀신처럼 폭염이 멈추었다. 신기하고 감사하고 다행이다. 폭염을 꺾을 수 있다면 태풍이라도 와주길 바랐으니 무슨 말을 더 하겠는가? 올 여름 예상을 뛰어넘는 긴 더위에 아이도 어른도 힘들었고 가축, 풀과 나무도 힘들었다. 탈 없이 잘 견뎌준 모든 생명체에 감사할 뿐이다. 

얼마 전 방학을 맞은 아이들과 집에 있는 게 고역이라 몇 번 찾아갔던 청소년문화의집 마당에서 대추나무를 만났다. 이곳 나무들도 뜨겁게 내리쬐는 햇볕에 상처받지 않고 잘 견디고 있었다. 대추 열매를 주렁주렁 매달고 마치 ‘이제 곧 가을이 올 테니 안심하라’는 말을 전하는 것처럼. 아직은 새파란 대추 열매가 달려 있지만 추석이 가까이 오면 빨갛게 익어갈 것이다.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아진다. 가을을 가장 먼저 알려주는 것 같아 반가웠다.

대추나무는 ‘대조목(大棗木)’이란 한자 이름에서 왔다. ‘대조나무’로 부르다가 ‘대추나무’가 된 것이다. 꽃은 너무 작아 눈여겨보지 않으면 핀 줄도 모르고 지나가고, 잎도 나무들 중 늦게 피는 특징이 있다. 잎도 꽃도 늦게 피지만 대추 열매가 일찍 달리기 시작하고 가을이면 붉은 대추 열매를 파란 하늘 가득 매달고 있으니 제 할 일은 다하는 기특한 나무이다.   

대추나무는 우리의 일상과 관련이 깊다. 보통 시골집에는 감나무와 함께 대추나무 한그루 정도는 심는다. 집 안에 또는 가까운 곳에 심어서 열매는 열매대로 잎은 잎대로 쓰임새가 좋다. 대추는 조율이시(棗栗梨柿)라 하여 제사상에 빠지지 않는 과일이다. 떡이나 약식, 대추밥, 대추차 그리고 삼계탕 등 감초처럼 여러 음식에 두루 쓰인다. 또한 어떠한 약이든 대추 한두 알쯤은 넣어서 약을 달이니 약재로도 대추만한 게 없다. “대추를 보고 먹지 않으면 늙는다”는 말이 있을 정도니, 건강을 지키고 싶다면 대추를 가까이 하는 것도 좋겠다. 우리나라에서 대추를 언제부터 먹었는지는 정확하지 않으나 삼국시대 이전에 들어온 것으로 보고 있다. 그 보다 후인 고려 명종 18년(1188)의 <고려사>에는 “대추나무 등의 과일나무 심기를 독려했다”라는 기록이 있다.

대추나무와 관련된 말 가운데 “대추나무에 연 걸리듯”이라는 말이 있다. 일이 잘 안 풀리고 복잡하게 얽힐 때 쓰는 말이다. 연날리기는 설날에서 보름 사이의 추운 날씨에 하는 민속놀이이다. 잎이 진 겨울 대추나무는 잔가지가 많고 가시까지 달려 있어서 잘 날 것 같은 연들이 번번이 가시에 걸려 애를 태웠다. 또 “대추나무 시집보내기”라는 말도 있다. 정월 대보름이나 단옷날에 아래쪽에서 둘로 갈라진 나무줄기 사이에 커다란 돌을 끼워두면 대추가 많이 맺힌다고 한다. 이렇게 많이 열리는 대추 열매는 다산의 의미를 담고 있어 결혼식 폐백에서 어른들이 새색시에게 대추를 던지며 덕담 한마디씩 건넨다. 대추는 열매를 ‘딴다’고 하지 않고 ‘턴다’고 한다. 바닥에 넓은 멍석을 깔고 긴 막대를 이용해 가지를 때려서 털어낸다. 가시가 많아 일일이 손으로 열매를 따기 어렵기 때문이다.

대추나무 목재는 치밀하고 단단하여 방망이나 떡메 등을 만드는데 사용되었다. 붉은빛이 강해 귀신을 쫓는 벽사(辟邪)의 의미를 담고 있다. 특히 벼락 맞은 대추나무를 ‘벽조목(霹棗木)’이라하여 부적을 만들거나 도장을 새기면 불행을 막아주고 병을 물리친다고 믿었다. 하여 오는 가을에는 대추나무와 대추열매를 가까이 해볼 것을 제안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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