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홑왕원추리꽃.

길가나 공원에서 태양빛을 닮은 꽃이 눈길을 끈다. 뜨겁게 내리쬐는 한낮에 긴 꽃대를 세우고 주황색 바탕에 노란색 줄무늬를 가진 큼직한 꽃. 백합과의 여러해살이 풀인 원추리이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홑왕원추리’. 원추리보다 꽃이 크기 때문에 왕이요, 홑꽃이기 때문에 ‘홑왕원추리’라 한다. 한여름 뙤약볕이나 장맛비 속에서도 활짝 핀 원추리가 당당해서 좋다.

원추리는 7~8월, 꽤 오랫동안 꽃을 볼 수 있으나 알고 보면 무궁화처럼 아침에 피었다가 저녁에 지는 하루살이 꽃이다. 그래서 원추리가 영어로는 ‘day lily’이다. 어제의 꽃은 지고 다음날 다른 꽃송이에서 새로운 꽃을 활짝 펼치는 덕에 여름 내내 볼 수 있다. 꽃이 드문 여름에 허리 정도의 무리지어 피어있는 원추리 꽃이 더욱 반갑다.

원추리는 한자로 망우초(忘憂草)라고 한다. ‘근심을 잊게 만드는 풀’이니 뜻으로만 치면 이만한 풀이 있겠는가? 예로부터 여인들이 원추리를 가까이하면 아들을 낳을 수 있다고 해서 ‘득남초(得男草)’, ‘의남초(宜男草)’라는 이름도 가졌다. 이는 원추리 꽃봉오리가 아기의 고추를 닮았기 때문에 생겨난 속설이다.

원추리는 ‘훤초(萱草)’라고도 한다. 중국의 맹교가 지은 “훤초는 고당 계단에 자라니/ 길 떠나는 자식은 하늘가로 떠나네/ 자애로운 어머님은 문에 기대어 바라보노니/ 훤초 꽃도 눈에 들어오지 않네(중략)”라는 시가 있다. 또 당태종 이세민이 자신의 어머니가 생전에 머물던 집 뜰에 훤초 즉 원추리를 가득 심었다고 해서 흔히 어머니를 높여 훤당(萱堂)이라고 한다. 원추리는 지난해 나온 잎이 마른 채로 새순이 나올 때까지 남아 있어 마치 어린 자식을 보호하는 어미와 같다고 하여 ‘모예초’, 사슴이 먹는 해독초라 하여 녹총이라는 이름도 있다. 원추리의 뿌리는 훤초근(萱草根)이라 하여 유방병 치료에도 이용된다. 하여 원추리는 이래저래 여성과 관련이 깊은 것 같다. 봄에 나는 원추리 어린순은 넘나물이라고 하여 나물로 무쳐 먹는데 미역처럼 미끈거린다.
 
원추리는 예로부터 가정의 장독대 뒤나 화단에 심어 관상하거나 꽃꽂이로 이용되어 왔다. 요즘에는 햇볕에 강하고 분진, 매연 등 공해에도 강해 도로변에 관상용으로 널리 심고 있다. 한국, 중국, 일본 등 주로 동아시아에 약 20~30종이 있고, 우리나라에는 왕원추리, 노랑원추리, 애기원추리, 각시원추리 등 약 8종이 자생하고 있다. 늘 그렇듯 꽃이 화려하고 잘 자라면 개량된 원예품종들이 많이 보급되고 있는데 우리나라에도 식물원을 중심으로 비슷하지만 조금씩 다른 50여 품종 이상 들어와 있다. 원추리는 꿀이 있어 진딧물이 많이 찾는다. 꽃이 필 때 줄기에 희게 벌레들이 붙어 있어 실내에서는 관리를 잘해줘야 한다.

유래 없는 폭염에 어느 해 보다 간절하게 가을을 기다리고 있다. 이제는 꽃보다는 열매를 주렁주렁 매달 나무를 살필 일이 더 많을 것이다. 단풍이 강원도 설악산부터 시작되었다는 기사를 접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폭염이 길어질수록 ‘나무를 심어야 한다, 숲으로 가자’등의 말들이 자연스럽게 나온다. 인간의 욕심이 더해져 지구가 펄펄 끓고 있는 지금, 플라스틱 안 쓰기 운동을 시작으로 가정, 회사, 공공기관 등에서 일회용품 줄이기 운동을 광범위하게 펼쳐보자는 공감대가 높아지고 있다. 이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되었다. 더 늦게 전에 시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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