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톤 이야기⑦ 울트라마라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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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톤 이야기⑦ 울트라마라톤
  • 송창섭 삼천포여고 교장 / 시인
  • 승인 2018.08.16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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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창섭의 배우며 가르치며]
▲ 송창섭 삼천포여고 교장 / 시인

근래에 들어 사람들이 심심찮게 쓰는 말 중 하나가 울트라(ultra)입니다. 명사로는 ‘정치적 극단주의자, 과격파’라는 뜻이고, 다른 낱말 앞에 붙으면 ‘초극(超克)의, 극단적인’의 뜻을 나타냅니다. 범상치 않아서 자신이 가진 한계를 뛰어넘는다는 말이지요. 마라톤에서는 풀코스 거리 42.195km를 넘으면 울트라마라톤이라 하지만 일반적으로 거리가 100km 이상인 경우에 명칭으로 붙여 씁니다.

마라톤 대회에서 풀코스를 뛰는 것만으로도 인간 한계에 도전한다고 사람들은 말합니다. 결코 지나친 표현은 아니겠지요. 105리나 되는 길을 꾸준히 달린다는 것은 감히 상상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이런 상상의 벽을 보란 듯이 허물고 끊임없이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고 도전하고 성취하려는 근성을 인간은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한 정신이 울트라마라톤을 낳은 근간이 된 셈이지요.

우리나라에서 열린 첫 공식 울트라마라톤대회는 IAU(International Association of Ultrarunners, 세계울트라마라톤연맹) 100km 한국대표선발전(2001.5.13.)이었습니다. 그리고는 한반도횡단 311km(2001.9.30. 강화-강릉), 대한민국종단 550km(2002.7.14. 태종대-임진각), 대한민국종단 643km(2003.7.11. 해남 땅끝-강원도 고성) 대회가 잇따라 열렸습니다.

저는 서울 여의도에서 열린 제2회 서울울트라마라톤대회(2001.11.11.)에서 처음 100km에 도전하여 끙끙거리며 뛰었습니다. 당시 10시간 이내로 도착하면 언더텐(Under-Ten)이란 칭호를 붙여 줬는데, 그때 제 완주 기록이 9시간 59분 41초였습니다. 파김치가 된 몸으로 마지막 남은 700-800m를 혼신의 힘을 다해 달렸던 그 장면, 불과 십여 초를 남겨 두고 결승선을 밟았을 때의 그 환희는 너무도 각별하여 17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히 기억합니다. 

매월 우리나라 도처에서는 울트라마라톤대회가 열립니다. 봄여름가을겨울 그리고 낮밤의 구분 없이 도전의 역사는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습니다. 어찌 보면 이는 마라톤대회라기보다 모험(Adventure)이라 표현하는 게 더 어울릴지 모릅니다. 그만큼 체력적으로 힘들고 어렵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상당한 거리를 차들이 질주하는 도로를 달려야 하기에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순간이 많다는 점입니다. 한 발 내딛는 곳마다 위험 요소가 도사리고 있어 시작부터 결승선을 밟을 때까지 긴장의 끈을 풀 수가 없습니다. 몸의 힘을 소진할 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매우 피곤한 여정입니다. 하긴 이 같은 울트라가 지닌 역설적인 매력이 없다면 그 고생적 즐거움을 누가 나서서 하겠습니까.

한계를 뚫고 새로운 영역에 뛰어드는 철각들의 발걸음은 비단 국내에만 그치지 않습니다. 일본 사쿠라미치 250km, 중국 고비사막 250km, 그리스 스파르타슬론 246km, 이집트 사하라사막 250km, 칠레 아카타마사막 250km 등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울트라마라톤대회가 몸과 마음의 젊은 피들을 부르고 있습니다.

따분한 현실, 단조로운 삶에서 자신을 일탈시키고 새로운 경지로 나아가려면 개척 의지와 실험 정신이 필요합니다. 길이 있어도 갈까 말까 망설이는 이들이 있습니다. 오직 선택한 자만이 길을 밟고 길의 주인이 될 수 있겠지요. 더 어려운 선택이겠지만 길이 없으면 만들어서라도 간다는 뚝심이 울트라 전사들의 살아있는 혼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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