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아열대작물, 한반도 미래 먹거리 될까?(1)

▲ 김해 동상시장의 한 채소가게. 다양한 아열대작물이 판매대를 가득 채우고 있다.

점점 더워지는 지구와 한반도. 특히 2018년은 최악의 폭염을 맞으며 ‘지구온난화’ 위기를 실감하는 한 해를 보내고 있다. 이런 가운데 아열대작물에 쏠리는 관심이 각별하다. 국가 차원에선 기후변화에 따른 농업환경의 변화를 신경 쓰지 않을 수 없고, 농민들 입장에선 새로운 소득 작물 발굴에 기대를 거는 모습. 그러나 한반도의 기온 상승이 곧 아열대농업의 성공을 보장하진 않는다는 게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겨울은 여전히 춥고, 이를 극복하며 생산한 열대과일은 비싸며, 채소류는 아직 우리의 입맛에 낯설다. 이에 뉴스사천은 우리나라 아열대작물 재배 현황과 개선점을 살피면서 미래 가능성을 엿보는 기회를 4회에 걸쳐 갖는다.

지구온난화와 한반도의 기후변화

화석연료 사용 남발과 그에 따른 온실가스 배출이 인류에 큰 재앙으로 다가오리란 전망은 오래 전 나왔다. 바로 지구온난화다. 그리고 한반도는 올해 여름, 그 심각성을 어느 때보다 강하게 경험하고 있다. 역대 낮 최고기온은 물론 최장 폭염일수도 갈아치우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도 폭염을 특별재난 수준으로 인식하고 대책 마련에 분주하다.
 

▲ 지구온난화에 따른 한반도 아열대기후대 예측 시나리오.(자료 출처= 온난화대응농업연구소 2017)

이렇듯 현실로 다가온 지구온난화와 기후변화를 두고 근본적 해법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에 유엔 산하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는 세계 각국이 온실가스 배출을 줄여나갈 시나리오를 마련하고 그 이행을 촉구하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노력이 잘 진행된다 하더라도 속도만 조금 늦출 뿐 지구온난화 흐름을 막기엔 역부족일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우리나라 농업기술과 식량정책에 책임 있는 농촌진흥청이 아열대작물에 관심을 두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농촌진흥청이 지난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남한) 경지 면적 중 아열대기후 지역은 2020년 10.1%, 2060년 26.6%, 2080년 62.3%로 급격히 늘어난다. 물론 이는 온실가스 배출 저감을 위한 노력을 제대로 하지 않았을 경우를 가정한 것이지만 앞으로 한반도가 아열대기후로 점점 변해갈 것임을 보여주기에 충분해 보인다. 여기서 말하는 아열대기후는 연중 가장 추운 달의 평균기온이 –3℃~18℃이면서, 월 평균기온이 10℃가 넘는 달이 8개월 이상인 기후를 말하고, 그런 지역을 아열대기후대라 부른다.

이미 가까이 와 있는 아열대작물

따라서 아열대작물은 이런 아열대기후대에서 자라는 각종 채소와 과수를 일컫는다. 여기에 편의상 열대지역에서 나는 과실류도 아열대작물로 부르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아열대 채소와 과일. 이들 중 우리에게 먼저 다가온 건 과일이었다.

대표적인 게 바나나다. 바나나는 1980년대에 제주도를 중심으로 가장 활발히 재배됐다. 그러다 1993년 우루과이라운드(UR) 협상 타결로 제동이 걸렸다. 경남 진주를 비롯한 일부 육지까지 뻗어나갔던 바나나 재배 붐은 저가의 수입산에 밀리면서 자취를 감췄다. 파인애플도 비슷한 운명이었다.

그런데 최근 새로운 양상이 일고 있다. 바나나가 다시 등장한 것은 물론이고 재배지역도 전국으로 확대되고 있는 것이다. 품목도 다양해 망고, 구아바, 용과, 파파야, 아보카도, 백향과(패션프루트) 등 그 수를 헤아리기 어렵다. 심지어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의 음료시장을 자랑하는 커피까지 국내에서 재배되는 실정이다.

▲ 국내 재배 주요 열대 과일(이미지=온난화대응농업연구소 2017)

우리나라에서 아열대 과일 재배가 새로운 국면을 맞는 배경은 무엇보다 한반도의 기후변화에 있다. 하지만 시장의 변화도 한몫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사과와 배 등 기존 과일 생산 농가들이 예전만큼 소득이 오르지 않자 다른 쪽으로 고개를 돌리면서 아열대 과일에 관심을 둔다는 얘기다. 딸기와 고추, 호박 등 기존 원예시설농가들도 비슷한 상황. 이들은 기존 시설을 계속 활용한다는 점에서 부담이 덜한 편이다.

나아가 수입산 과일과 가격 경쟁력을 어느 정도 갖췄다는 점도 시장의 변화다. 수입산에 비해 신선함과 안전성 면에서 소비자들의 좋은 평가를 받으면서 가격 격차가 상당 부분 줄어든 것이다.

체류 외국인 200만 시대

결혼으로 새롭게 국적을 취득한 한국인, 노동을 목적으로 국내로 들어온 외국인들의 증가는 아열대 채소 소비시장을 크게 열었다. 이주노동자들이 밀집한 경기도 안산과 경남 김해의 경우 이미 시장규모가 엄청나다. 처음엔 결혼이주여성들이 조금씩 농사를 지어 시장에 공급하는 정도였으나 지금은 대규모 시설농가들이 결합하는 추세다.

농촌진흥청 조사에 따르면 오크라, 삼채, 여주, 공심채, 강황, 사탕무, 얌빈, 게욱, 롱빈, 아티초크, 인디언시금치, 차요테 등 다양한 채소류가 국내에서 재배되고 있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1360농가에서 245헥타르 규모로 재배하는 것으로 나타났지만, 과일에 비해 채소류는 재배 현황 파악이 어려워 규모가 더 클 가능성이 높다는 게 관련 기관과 업계의 공통된 분석이다. 실제로 경남에서 외국인들이 가장 많이 찾는다는 김해 동상시장을 취재한 결과, 앞서 언급한 것보다 훨씬 더 다양한 채소류가 판매대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아열대 채소의 주 소비층은 역시 외국인들이다. 법무부의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에 따르면, 2018년 6월 말 기준 국내 체류 외국인 수는 229만1653명이다. 이들 중 상당수가 동남아계 또는 아열대기후대 출신이어서 시장이 형성되는 셈이다.

▲ 온난화대응농업연구소에서 올리브 유전자원 도입 및 환경 적응성 평가를 하고 있다.

결국 지구온난화에 더불어 거주자의 다양성이 커지면서 한반도에서도 적정한 시장이 형성되고, 그에 따라 아열대작물 재배가 확산되는 추세다. 여기에 농촌진흥청은 내년부터 농약잔류허용기준(PLS)이 전면 확대된다는 점에 주목하면서 아열대작물 재배도 큰 전환점을 맞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그렇다고 아열대작물 재배가 꽃길인 것만은 아니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겨울철 추위가 여전해 노지 재배가 힘들다는 게 가장 손꼽히는 문제다. 가온시설을 할 경우 생산단가가 올라간다. 아열대채소의 경우 다수의 한국인들에게 익숙치 않다는 게 문제다. 다양한 요리법을 개발하는 등 풀어야 할 숙제가 만만찮다.

※ 본 취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 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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