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쯤인가. 가족과 함께 노회찬 의원의 사천 강연장에 갔었다. 강연내용이 잘 생각나지 않지만, 차기 대선에서 민주당 후보와의 단일화를 위한 단 하나의 조건은 선거제도 개혁에 관한 약속이라고 했다. 의석수가 정당지지율에 연동되고 1표의 가치가 동일한 선거제도 말이다. 군소정당이라고 해서 특별한 혜택을 달라는 것이 아니라 군소정당의 몫을 빼앗아 가는 현재의 선거제도를 바로잡아 달라는 게 핵심이었다.

2000년 노회찬이 주도한 민주노동당 창당준비위원회는, 정당투표를 인정하지 않고 지역구 국회의원 후보자의 득표를 정당에 대한 지지로 간주하여 비례대표의석을 배분하는 당시 공직선거법에 대한 헌법소원을 제기하여 헌법재판소로부터 한정위헌 결정을 얻어냈다. 위 결정에 따라 정당투표가 도입되어 민주노동당은 2002년 지방선거에서 8.1%, 2004년 국회의원선거에서 13%의 정당득표로 제도권 진입에 성공했다. 헌법재판소는 1인 1표제의 여러 부당함을 지적하면서, 이러한 공선법 규정은 신생정당에 대한 국민의 지지도가 반영되지 못하고 반대로 기존의 세력정당이 국민의 실제 지지도를 초과하여 의석을 배분받게 되어, 국민의 의사를 제대로 반영하고 국민의 자유로운 선택권을 보장할 것을 요구하는 민주주의 원리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지난 30년간 진보정당운동에 매진한 노회찬에게 마지막 한 가지 소원이 있었다면 그것은 선거제도개혁이었으리라 단언한다. 그가 바라온 선거제도는 독일 등 북‧서유럽식의 정당명부제비례대표제였다. 정당득표율에 따라 해당 정당의 의석수가 정해지는 제도다. 예컨대, 의원정수가 300명인데 A정당이 정당투표에서 20%를 얻었다면 그 정당의 전체 의석은 60석으로 정해진다. A정당이 지역구선거에서 50명이 당선되었다면 정당명부에서 비례의원 10명이 채워져서 60석이 되고, 반대로 지역구선거에서 61명이 당선되었다면 추가할 비례의원 없이 그 61명이 전부 의석을 가진다(이를 초과의석이라고 함). 정당지지율이 의석수에 그대로 반영되어 국민의 정치적 의사가 가장 잘 반영되는 선거제도로 평가받는다. 또한 국민의 다양한 의사가 다양한 정당으로 통해 반영될 수 있고, 거대정당의 출현을 막아 민주주의가 후퇴하는 것을 막을 수도 있다.

지난 총선 전에 우리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이러한 선거제도를 본 딴 국회의원 선거제도를 제안한 바 있다. 기득권 거대 양당의 반대와 멸시 속에 논의테이블에도 올라가지 못했지만. 전국을 6개의 광역권역으로 나누어 인구수에 비례하여 각 권역별 의석수를 정하고(그 경우 1권역 당 평균 50석이 됨), 해당 권역에서 정당의 득표율에 따라 의석수를 배분한다는 것이다. 예컨대, A정당이 갑권역에서 10%의 정당득표를 하면 5석이 확보되고, 지역구당선자 수가 이에 미치지 못하면 5석이 될 때까지 비례대표의원이 그 자리를 메우게 된다. 전국에서 고르게 10%의 지지를 받은 신생정당은 30석으로 국회활동을 시작하게 되는 것이다. 기존 거대정당에겐 지역주의와 기득권에 안주할 수 없게 하고, 국민에겐 너무나 바람직한 국회가 만들어 지는 것이 아닌가. 정치개혁은 선거제도개혁으로부터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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