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는 사천]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

▲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아고타 크리스토프 지음 / 까치 / 2014

가장 긴 사다리를 타고 내려가 인간 세상의 추악하고 무겁고 기묘한 조각들에 둘러싸여 깊게 가라앉은 혼돈의 세계를 맞닥뜨리게 되는 매혹적인 탐험이 있다.

잔혹한 여정이기에 종종 감정이 마모되거나 균열되는 지점을 지나게 되지만, 어느 순간 내 존재를 위안받게 되기도 하는 내면의 탐험을 이끌어 주는 책, 아고타 크리스토프의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은 몹시 매력적인 책이다.

아고타 크리스토프는 세계적인 철학자나 유명 작가들에 의해 종종 회자되는 헝가리 출신의 소설가로, 어린 시절부터 본인이 겪으며 보았던 2차 세계대전의 참상과 동유럽의 혼란스러운 전후 상황을 무대로 이 소설을 썼다. 원래 <비밀노트>, <타인의 증거>, <50년간의 고독>으로 제각각 독립적이었던 3부작 소설을 한 권으로 엮은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은 한국에 번역되어 소개된 지 20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핫하게 읽히고 있는 조용한 베스트셀러다.

이 소설은 ‘루카스’와 ‘클라우스’라는 쌍둥이 형제의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1부에서는 전쟁통에 냉혹한 할머니 집에 맡겨진 두 쌍둥이 형제의 거칠지만 순수한 시대가 드러나고, 2부에서는 홀로 할머니의 집에 남겨진 ‘루카스’의 이야기가, 그리고 3부에서는 ‘클라우스’와 함께 몰려오는 혼돈의 퍼즐들로 가득 채워진다. 그 퍼즐은 이야기가 끝나고도 완벽하게 맞추어지지 않을뿐더러, 거짓과 몽상을 오가다가 불편하게 끝맺어 버리고 만다.

더구나 각각의 사연을 품고 등장하는 캐릭터들도 만만치 않다. 아버지를 앞세워 지뢰를 터트리고 그 죽은 아버지를 밟고 국경을 넘는 아들, 누나를 죽이고 글은 완성하는 동생, 성직자의 강간, 보통사람들의 자연스러운 살인 등등 소름 돋게 잔혹한 장면이 무수히 이어지는 쉽지 않은 소설이다. 그럼에도 그 처절한 디테일로부터 독자가 눈을 돌리지 않을 수 있는 것은 감정의 과잉이나 주관적 표현을 절제한 단순명료한 문장들과 잘 처리된 문학적 장치들로 만들어지는 교묘한 완충 덕분이다. 치밀하고 아름다운 소설이다.

무수히 중첩되는 거짓과 진실 속에서 서로 다른 존재들이 얽혀드는 불완전한 퍼즐을 보며 어느 순간 깨닫게 된다. 모호하고 혼란스럽지만, 서로 주고 받는 관계의 지난한 과정 자체가 삶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 기묘한 우화 속에서 거짓과 진실의 공방은 의미를 잃는다. 우리는 이미 얻을 것을 충분히 얻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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