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며칠 몸이 좋지 않았는데 주말에 지리산으로 일박 산행을 다녀온 후 가벼워진 몸으로 기분 좋게 월요일 아침 출근하는데 슬픈 뉴스가 속보로 흘러나왔다. 노회찬 의원의 투신 소식이었다. 그의 죽음 앞에 처음 든 생각은, 진보는 좀 뻔뻔하면 안 되나? 사람은 누구나 잘못을 저지르는 법인데 양심과 소신에 따라 이타적인 삶을 살아온 사람은 왜 자신의 목숨을 던질 만큼 그리도 무거운 책임감을 져야하는 것인가? 라는 것이었다. 

필자가 그를 처음 만난 것은 2003년 사법연수원 수료를 앞두고, 노동단체를 돕는 변호사그룹에 취업하기 위해 실무수습을 받던 때였다. 그리고 그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된 것은 대학 1학년 말 즈음이었다. 합법적 진보정당 운동에 최초로 나선 인천지역민주노동자연맹이라는 단체를 통해. 

노회찬이라는 이름 석 자가 세상에 널리 알려진 때는 2004년 치러진 제17대 국회의원 총선거 때다. 당시 민주노동당이 정당투표에서 13%를 얻어 비례대표 8번이던 노회찬은 당선되었고, 자민련의 비례대표 1번이던 9선의 김종필은 정당득표율이 3%에 미치지 못하여 낙선되고 말았다. 세대의 교체이자 시대의 변화를 대변하는 사건이었다. 아주 오래된 보수의 대표주자가 퇴장하고 한국 역사상 처음으로 진보정당이 국회에 입성한 일대의 사건이었다. 당시 노회찬은 ‘50년간 한 판에서 계속 삼겹살을 구어 먹어 판이 새까맣게 됐으니 고기를 바꿀 것이 아니라 판을 갈아야 한다’는 말로 오랜 보수양당 구도의 혁파와 진보정당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 이후 촌철살인의 발언으로, 진보의 아이콘으로 많은 국민의 지지와 사랑을 받았다. 노회찬으로 인해 10선의 고지를 넘지 못하고 정계를 은퇴한 김종필은 92세를 일기로 얼마 전 사망했다. 김종필을 꺾고 제도권 정치에 발을 들인 노회찬은 김종필이 사망한 올해에 그와는 다른 이유로 사망했다. 이 역시 새로운 시대의 변화를 알리는 징조인가.

트루킹 특검에 쓰러진 노회찬. 자신이 지난 30년간 일구어 온 진보정당의 텃밭이 행여 자신에 대한 혐의로 인해 그 밭에 일어선 어린 싹이 다칠까를 염려했던 것일까. 날씨마저 이리도 더우니 말이다. 그래도 말이다. 얼굴이 조금 두꺼워도, 조금 뻔뻔해도 되지 않았을까. 권력을 수단으로 자신의 부와 명예를 추구하려는 무수한 자들의 무병장수 앞에 노회찬은 조금만 뻔뻔해도 좋았으련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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