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삼조 시인

늦은 봄날 해질 무렵의 산책길에서 평범하지만 그냥 넘기긴 아까운 한 일을 보았다. 70은 더 넘은 것 같은 노부부가 주택 사이 잡초 무성한 100여 평 땅을 말끔히 김매고 고랑을 지어  가꿔 놓은 것이다. 마나님께서 마지막 남은 한 무더기 풀을 매시는 동안 할아버지께서는 자못 근엄하게 기다리셨는데 할머니의 작업이 끝나는 대로 그 부분 땅을 일굴 준비를 하시는 것 같았다. 농기구는 오직 호미와 괭이 뿐이었다. 아마도 땅 주인이 땅을 그냥 놀리느니 경작을 하시라고 뒤늦게 요청을 한 듯, 씨뿌리기에 약간 늦은 듯해도 이들 노부부는 농사의 재미에 흠뻑 빠져 계신 것이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쉬어가면서 잡초 밭을 까만 옥토로 변모시켰다. 아마 한종일 걸렸으리라. 

경제 가치로 따진다면 그 100평 땅의 경작으로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씨앗 값, 거름 값, 노동력의 값을 따진다면 그 수확은 아마 보잘 것 없을 것 같은데 그래도 그들 부부에게는 그 열매를 더불어 나눌, 돈으로 바꿀 수 없는 이웃과 친지들의 기뻐하는 모습이 눈에 어른거려 즐겁지 않았을까. 천천히 가는 그 길이 거친 땅을 환하고 가치 있게 변신시킨 것이다.

우공이산(愚公移山)이란 한자성어가 있다. 우공이란 사람이 사는 마을 앞에 두 큰 산이 있어 출입하는 데에 여간 귀찮지 않은지라 우공이 드디어 그 산들을 치우기로 마음먹고 온 식구와 마을 사람을 동원하여 그 산의 흙을 파 삼태기에 옮긴 후 일 년 길을 걸어 바다에 그 흙을 버리고 오는 일을 반복하게 되었다. 사람들이 어느 세월에 그 산을 없앨 수 있겠느냐고 걱정을 하니 우공의 말이 이랬다. 내가 죽으면 내 아들과 손자가 대대손손 이 일을 계속 할 것인데 무엇이 문제냐고. 그 산의 산신령이 이 말을 듣고 큰 일 났다 싶어 스스로 그 산을 들어 딴 데로 옮기게 되었다고 한다. 우공의 ‘우(愚)’는 ‘어리석다’는 뜻을 가진 말이다. 하지만 그 어리석음이 산을 옮겼다고 옛 사람들은 믿었다. 

「맹자(孟子)」라는 책에는 ‘조장(助長)’이라는 말이 나온다. 한 가장이 논에 나가더니 이윽고 들어와 자기가 일을 많이 하여 몹시 피곤하다는 것이다. 그 아들이 논에 가 보니 벼의 싹을 뽑아 억지로 그 크기를 키워 벼가 다 말라 죽었더라는 비유에서 나온 말이다. 무슨 일이든지 급하다고 하여 억지로 하려 해서는 일을 오히려 망치고 만다는 뜻일 터이다.

최근에 남북 간 북미 간의 평화로 가는 일들이 금세 매듭이 지어지지 않아 염려한다는 말들이 들린다. 분단된 지 70년을 훌쩍 넘긴 세월 동안 서로 경계하고 질시하고 적대시하는 많은 일들이 있었다. 심지어 ‘친북(親北)’의 기미(機微)만 있어도 ‘빨갱이’라고 몰아세우는 것을 당연시했던 때가 엊그제 같다. 그 세월을 다 극복하는 데 시간이 얼마나 필요할까. 모든 일이 그렇듯이 너무 조급해 할 일이 아니다. 우공(愚公)처럼은 아니더라도 좀 천천히 가자. 천천히 가면 주위가 더 잘 보이기 마련이다. 억지로 조장(助長)하려는 생각도 버리자. 힘써 노력하고 기다리면 좋은 열매는 저절로 익지 않겠는가. 천천히 조금씩 밭을 만들어가던 저 노부부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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