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모에다가 지나치게 많은 대사를 하는 것으로 보아 그녀가 주인공임이 틀림없으리라. 요즘 필자는 티비 드라마를 보지 않는데 반해, 집사람과 꼬마가 즐겨보는 드라마 중 하나가 ‘미스 함무라비’다. 늦게 귀가한 어느 날 이들이 열중하는 티비를 곁눈으로 보았는데, 형사재판 중에 미모의 젊은 여판사가 증인을 득달같이 신문하고 있었다. 필자가 경험해 온 형사재판에서 보기 쉽지 않은 장면인데다가 증인이 숨기고 있거나 사실과 다르게 증언하는 점을 밝혀내는 일은 유죄의 입증책임이 있는 검사나 피고인의 무고함을 밝히려는 변호인의 임무라서 다소 의아했다. 뒤에 알고 보니 위 드라마의 작가가 현직 부장판사라니 이해가 안가는 바도 아니었지만.

그러고 보니 수개월 전 위 판사가 쓴 책을 읽은 적이 있다. ‘개인주의자 선언’이 그것이다. 자본주의라는 물질적 토대 위의 민주주의는 개인주의를 전제로 하고 있다. 고도로 발전한 자본주의 국가인 우리 대한민국은 여전히 봉건적 문화, 전체주의적 요소가 곳곳에 지배적으로 자리 잡고 있고 이는 민주주의의 발전을 가로막고 있다는 저자의 인식에 공감했던 기억이 있다.

사법권은 법원에 속한다. 인권의 최후의 보루이기도 한 법원은 죄 없는 자에게 부당하게 형벌이 가해지는 일도 없게끔 해야 하지만, 실체적 진실을 밝혀 죄 지은 자에게 응분의 형사책임을 지우는 일은 법원의 가장 중요한 존재이유다. 물론 수사를 통해 범인을 검거하고 증거를 확보하며 형사재판에 회부하여 유죄판결을 받아낼 책임 있는 기관은 검찰이지만, 형사재판에서 실체적 진실을 발견할 의무는 검사만이 아니라 법원에게도 주어져 있다. 이점이 민사재판과의 가장 큰 차이 중 하나다. 민사재판에서의 판사는 운동경기 심판과 완전히 동일하다.

판사는 양측의 주장을 성실히 귀 기울여 주되 어느 누구에게 재판상 필요한 힌트를 주어서는 안 된다. 당사자가 주장하지 아니한 사실에 대해서는 판단할 수도 없다. 원고와 피고는 각자의 주장 및 입증 책임을 지고 이에 실패하면 패소한다. 그래서 민사재판의 주요한 2가지 원칙은 당사자주의, 변론주의다. 반면에 형사재판은 검사와 피고인이 형식상 대등하다고는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대등하지 않다. 피고인에게 유능한 변호인이 있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도 아니다. 또한 실체적 진실 발견 의무가 법원에게 부여된 이상 법원은 검사와 피고인의 주장이나 입증에 따른 판단만이 아니라 직권으로 재판상 여러 행위와 조치가 가능하다. 이를 직권주의라고 한다. 당사자주의와 대별되는 개념이다.

피고인이 신청한 증인이 피고인에게 유리하도록 사실과 다르게 증언하는 증인을 추궁해야 할 사람은 유죄의 입증책임이 있는 검사지만, 위 드라마에선 주인공인 여판사가 그 역할을 대신한다. 판사가 거세게 증인을 추궁하자 우물거리는 증인을 보다 못한 변호인이 끼어들었다.
 
판사는 변호인의 발언마저 제압한다. 피고인의 보호자인 변호인의 이런 저런 신문에 판사가 짜증스럽게 그 신문을 제지하는 일은 현실에서 흔히 있는 일인데, 반대로 판사의 집요한 신문에 변호인이 끼어드는 일은 현실에서 드물다. 유죄를 입증하려 애쓰는 검사, 피고인의 억울함을 성실히 변호하는 변호인, 실체적 진실발견을 위한 선입관 없는 판사, 이 삼자의 균형과 조화야말로 무고한 자를 벌하거나 죄 지은 자를 면책할 가능성이 줄어드는 유일한 방법이다. 진실은 언제나 논쟁을 통해서만 아주 서서히 드러나는 법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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