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헌법재판소가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대체복무제를 규정하지 아니한 병역법 규정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헌법재판소는 법원이 아니기 때문에 그 결론을 판결이라 하지 않고 결정이라고 부른다.

헌법불합치는 법률의 어떠한 규정이 헌법이 정한 기본권을 중대하게 침해하므로 헌법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의미인데 사실상 위헌과 동일하다. 다만 위헌은 그 결정 즉시 해당 법률규정의 효력이 상실되는 것이어서 그런 경우 입법의 공백에 따른 혼란이 우려되므로 국회로 하여금 일정 기간 내에 헌법에 위반되지 않는 방식으로 해당 법률의 개정을 주문하면서 한시적으로 그 효력을 유지시키는 결정이다.

위헌결정과 마찬가지로 헌법불합치결정 역시 9인의 재판관 중 6인의 찬성이 필요하다. 그러나 정당한 사유 없이 입영을 거부하는 자에 대한 형사처벌규정에 대하여는 4인의 재판관만이 위헌의견을 내어 결국 합헌결정이 내려졌다.

뒤늦은 감은 있지만, 우리 사회에서 가장 보수적일 수 있고 또한 최상의 기득권에 속하는 60대 나이의 헌법재판소 재판관들조차도 시대의 변화와 요청에 부합하는 바른 결정을 하였다는 생각과 함께 최근에 조성되고 있는 한반도 평화 분위기도 이러한 결정에 긍정적인 작용을 하였으리라 여겨진다.

그런데, 일각에서는 양심과 종교를 핑계로 병역의무를 기피하려는 사람들이 속출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특히 현역으로 군 복무를 마친 보수적 성향의 중장년층에서 그렇다. 국가의 안전과 국민간의 형평성을 고려한 염려라는 점에는 의심을 두지 않는다. 그러나 민주주의는 다수에 의한 지배를 의미하지만 소수자에 대한 배려에도 충실해야만 그 진정한 의미를 가지는 것이다.

우리 사회의 대표적인 양심적 병역거부자는 여호와의 증인이라는 종교단체에 속한 신도들이다. 이들은 감옥에 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자신의 종교적 양심을 지켜왔다. 이들을 국가라는 공동체에 해악을 끼치는 자라고 비난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일제강점기에 일본 경찰의 총칼 앞에 모든 종교단체가 신사참배를 강요당했을 때도 이들만은 목숨을 걸고 이를 거부하면서 자신의 종교적 양심을 지켰다. 애국과 매국의 관점에서 보면, 이들은 일제와 가장 강하게 싸웠던 애국자라고 할 수도 있지 않은가.

그 누구도, 그 무엇도 불가능을 요구할 수 없다. 종교적 양심상 허락되지 않는 불가능한 일을 국가라는 이름으로 강요하는 일은 인권이나 민주주의와 상충된다. 불가능하다면 그와 유사한 다른 의무를 부과하면 된다. 그것이 대체복무다.

총을 들고 적을 무찌르는 훈련을 하는 것만이 나라를 지키고 병역의 의무를 이행하는 것은 아니다. 사회 일각의 병역회피수단에 대한 우려는 엄격한 사전심사와 함께 군복무와의 형평성을 고려한 복무기간, 처우 등에 대한 차별화를 통해 해소될 수 있다. 병역거부는 집총거부를 의미한다. 총을 들지 않겠다는 것 뿐, 국가를 위한 어떤 의무도 이행하지 않겠다는 것이 아니다.

우리 사회는 이미 경찰, 소방, 기타 공익요원 등 군복무를 대체하는 분야가 광범위하게 존재하고 있다. 이들이 그 각 의무를 수행함에 있어 사람에 대한 살상을 전제로 한 총을 사용할 일이 무엇이 있다는 말인가. 대체복무는 지금과 같은 징병제를 전제한 논의다.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의 분위기가 더욱 성숙되고 상호 신뢰를 통한 군축이 이뤄져 단계적인 모병제로 전환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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