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선한의 영화이야기

▲ 영화 포스터.

<신세계> 이후 박훈정이란 이름이 주는 기대치와 설렘이 있었다. 그러나 차기작들은 기대를 만족시키기엔 부족했음이 사실이다. 그래서 ‘다른 영화 찍을 생각하지 말고 신세계 프리퀄을 보여주세요’라는 팬들의 말이 우스갯소리가 아닌 진심처럼 들린다. 이런 그가 <마녀>로 돌아왔다. 장르는 슈퍼히어로물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는 안티히어로물이며 여기에 아쉽지만 흥행하고는 거리감이 있는 여성 원톱 영화다.

한 가지 시도도 힘겨울 텐데 부담스러운 여러 요소들을 한꺼번에 뭉뚱거렸으니, 이쯤 되면 ‘도 아니면 모’다. 흥행에 부담을 가질 수밖에 없는 상업영화 감독의 이런 패기는 어디서 나온 것일까? 답은 의외로 간단해서 본인이 가장 좋아하는 장르(이야기)이기 때문이라고 개봉 첫날 인터뷰에서 밝히고 있다. 이렇든 저렇든 슈퍼히어로물이 뿌리내리기 힘든 한국 영화계에서 <마녀>의 이런 시도는 반갑다.

다만 영화 자체의 완성도는 별개의 문제라 호불호를 떠나 마냥 엄지를 치켜들 수는 없다. 박훈정 감독의 장점이자 단점일 수 있는 느린 호흡은 이번 영화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당연히 헐리웃 슈퍼히어로물과의 차별점인 동시에 지나치게 늘어진다는 불평이 나올 수밖에 없다. <마녀>가 3부작으로 기획되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후속작에 대한 밑밥 혹은 안내로 볼 수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친절이 지나치다. 매체가 영화가 아니라 소설인 것으로 착각한 건 아닐까 싶다. 영상매체는 말 그대로 눈으로 보여주는 것이 장점인데 어떻게 이야기조차 열심히 대사로 설명하고 있으니, 게으른 제작진 덕분에 보는 즐거움을 빼앗겨버렸다.

반면 늘어지는 전반부와는 대조적으로 후반은 굉장히 알차다. 전반의 늘어짐을 캐릭터가 지닌 선명성이 이어주기 때문에 전반의 지루함을 버티고 나면 후반의 호쾌한 액션은 선물처럼 느껴진다. 특히 1,500대 1의 관문을 뚫고 데뷔한 신인배우 김다미는 이 영화의 가장 큰 수확이라 불러도 될 정도로 제 몫 이상을 해낸다. 전후반부의 대조적인 얼굴로 관객들을 설득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3부작이라고 하는데, 이러나저러나 시작은 적당하게 열었으니 기대감을 충족시킬 후편만 나오면 된다. <신세계>처럼 속편 또는 프리퀄을 무척이나 기다리게 해놓고 소식조차 감감해지면 어쩌나 싶어서다. 이제는 정치인도 공수표를 남발했다간 곤욕을 치르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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