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능소화

요즘 길을 가다보면 주택가 담장을 감싸고 있는 능소화 꽃을 흔히 볼 수 있다. 실례인 줄 알면서 담장 넘어 살짝 집안을 들여다본다. 뼈대 있는 양반집 같은가? 예부터 능소화는 양반집에만 심을 수 있다하여 일명 ‘양반꽃’이라 부른다. 꽃으로도 신분을 차별하나 싶어 기분이 나쁘다. 능소화를 한자로 풀어보면 업신여길 능(凌)에 하늘 소(霄) 자를 쓴다. 옛날 상민의 집에서 능소화가 발견되면 관가에 잡혀가 곤장을 맞았다고 하니 이름에서 조차 거만함이 묻어난다.

능소화는 꽃모양으로만 치자면 작은 나팔 같기도 하고, 깔대기 같기도 하다. 누군 사람의 귀를 닮았다고도 한다. 능소화는 접시꽃과 함께 조선시대 장원급제자에게 씌어준 어사화로도 쓰였다. 관리로 나가게 되면 백성들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라는 의미이다. 그래서 꽃말이 ‘명예’인가? 청백리 관리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백성들이 위임한 공적인 권력을 사적으로 쓰는 관리들이 너무도 많은 터라 청백리까지는 바라지도 않으니 최소한의 명예정도는 지켜주는 관리들이 많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 바람은 오늘날 더 절실하다.

왜 능소화일까? 전설이 있다. 궁궐에 ‘소화’라는 이름을 가진 궁녀가 있었다. 어느 날 임금의 사랑을 듬뿍 받은 소화는 후궁으로 신분상승이 되었다. 하지만 다른 후궁들의 질투로 인해 소화는 궁에서 쫓겨나게 된다. 쫓겨난 소화는 궁 밖에서 임금을 애타게 그리워하다가 결국 죽게 된다. 다음 해 담장 밑에 꽃으로 피어나니 바로 능소화다. 임금을 보고 싶은 마음에 높은 담도 거뜬히 타고 올라가는 낙엽성 덩굴나무이다. 대부분의 덩굴 식물은 덩굴손을 가지고 다른 물체를 휘감아 오르며 자란다. 이에 반해 능소화는 튼실한 자기 줄기를 꼬면서 위로 자라다가 줄기의 마디에서 생기는 흡착뿌리를 벽이나 바위, 다른 나무에 붙여 타고 오른다. 수양공원 침오정 아래 연못 옆 벽에 흡착뿌리를 붙이고 넓게 피어있는 능소화가 한창이다. 이 보다 더한 능소화 군락을 보고 싶다면 전북 진안 마이산 탑사를 가면 된다. 한쪽 절벽을 드넓게 덮고 있는 능소화 꽃이 장관이다.

짙은 녹음 속에서도 능소화의 붉은 꽃이 도드라지는 여름이다. 다른 꽃에 비해 꽃이 상당히 큰 편이며, 꽃의 안쪽을 자세히 살펴보면 노란색 줄무늬가 있어 꽃 보기가 드문 요즘에 사람들의 시선을 한눈에 사로잡는다. 꽃이 질 때에는 미련 없이 송이째 뚝뚝 떨어진다. 능소화의 꽃가루가 갈고리처럼 생겼기 때문에 눈에 들어가면 실명할 수 있다는 말이 한 때 퍼지기도 했다. 하지만 현미경으로 보아야 꽃가루가 보일 정도로 크기가 작아 실명의 원인이 되지 않으니 안심하고 길러도 좋고, 가까이 다가가 꽃을 살펴도 괜찮다.

능소화는 추위에 약해서 한 세기 전만해도 서울 위 지역에서는 보기 드문 꽃이었다. 그러나 날씨가 점점 따뜻해지는 오늘날엔 서울을 비롯한 중부지방에서도 잘 자라고 있다. 최근엔 물 건너 온 미국능소화를 많이 심고 있다. 미국능소화는 꽃이 작고, 위로 향하여 피며 꽃의 색깔도 더 붉어 능소화와 쉽게 구별된다. 능소화의 원산지는 중국이다. 중국의 시경(時經)에 나오는 소지화(笤之華)란 이름의 꽃나무를 능소화로 보고 있어 적어도 3천 년 전부터 사람들이 심고 가꾸었던 나무임을 알 수 있다. 능소화가 우리 땅에는 언제 들어왔는지 기록이 없어 알 수 없으나 왠지 오래전에 들어와 우리의 삶과 함께하고 생김과 전설에서 동양적인 정서가 묻어나는 게 우리꽃 마냥 친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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