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수사와 재판을 소재로 한 드라마, 영화를 즐겨본다. 그런데, 간혹 형사재판의 피고인과 민사재판의 피고를 잘못 쓰거나 혼용하고 있는 경우를 자주 보게 된다. 법률가의 자문을 받지 않아서인지 아니면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식으로 시청자를 무시하는 발상인지 모를 일이다.

피고는 민사, 가사, 행정소송 등을 제기당한 사람의 신분을 나타내는 말이다. 민사소송 등을 제기한 사람인 원고의 상대방일 뿐이다. 잘잘못과는 하등의 관계가 없다. 반면에, 피고인은 검사에 의해 공소를 제기당한 형사재판의 당사자를 말한다. 피고인의 상대방은 검사다.

한편, 기소, 즉 공소제기 전에 수사를 받는 사람의 신분은 피의자라고 한다. 범죄의 혐의가 있다고 의심받는 자라는 뜻이다. 용의자로서 참고인 신분에서 증거가 나오면 즉시 피의자로 신분이 변경된다. 그래서 경찰과 검찰이 그로부터 진술을 받아 작성한 조서를 피의자신문조서라 한다. 그런데, 위 조서는 경찰이 작성했는지, 검찰이 작성했는지에 따라 증거능력이 달라진다. 경찰이 작성한 피의자신문조서는 피고인이 법정에서 그 내용을 부인해버리면 증거능력이 없다. 유죄판결의 증거로 사용할 수 없다는 뜻이다.

반면에 검찰이 작성한 피의자신문조서의 경우, 법정에서 피고인이 “그 조서의 내용이 사실과 다릅니다”라고 말해도 그와 관계없이 증거로 쓰인다. 그 증거를 믿을지 말지 여부는 판사의 자유심증에 달렸을 뿐이다. 검찰조사에서 보다 신중하게, 가급적 변호인의 도움을 받는 것이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민사재판 등에서 원고나 피고를 대리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변호사뿐이다. 예외적으로 주식회사의 지배인, 국가나 자치단체의 소속 공무원, 가족 등이 소송을 대리하거나 수행할 수 있는 경우가 있기는 하다. 이때 원고나 피고 측의 변호사는 ‘소송대리인’이다. 반면에 형사재판에서 공소를 제기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검사뿐이다. 이를 기소독점주의라고 한다. 그 유일한 예외로 고소사건에서 검사의 불기소처분에 불복하여 고등법원 판사에게 한 재정신청이 받아들여져 그 판사가 공소를 제기하는 제도가 있을 뿐이다.

한편, 최근 논의되고 있는 고위공직자 비리 수사처(공수처)가 검찰청과 별개의 조직으로 신설된다면 기소독점주의의 또 다른 예가 될 수 있겠다. 검사는 오직 검찰청에만 속하기 때문이다. 형사사건에서 피의자, 피고인을 조력하는 변호사는 ‘변호인’이라고 불린다. 변호사는 직업에 불과한 명칭일 뿐, 민사소송에서는 대리인, 형사소송에서는 변호인이라는 신분이 된다.

너의 목소리가 들려, 펀치, 동네변호사 조들호, 굿와이프... 형사재판을 소재로 하여 인기를 끈 국내드라마가 많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형사재판을 받는 수의차림의 피고인을 피고로 호칭한다면 이제 우리는 시청자를 무시하는 것이라며 살짝 웃어주자.

저작권자 © 뉴스사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