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귀나무꽃

자귀나무의 꽃은 화려하기 이를 데 없다. 해마다 보지만 어찌 저런 모습의 꽃을 피울 수 있을까 싶을 만큼 신비롭다. 분홍색 물을 들인 가는 명주실 뭉치를 일정한 길이로 잘라서 풀어놓은 듯한 모습, 공작이 부채 모양의 깃을 펼친 듯한 모습, 그림을 그리기 위해 약간 벌어진 붓에 분홍 물감을 묻힌 듯한 모습, 불꽃 놀이할 때 폭죽이 아름답게 터지는 모습 등 자귀나무 꽃의 화려함과 특이함 때문에 꽃에 대한 묘사도 다양하다. 이래저래 평범함을 거부한다. 

자귀나무는 중부 이남의 산기슭 양지에 흔하게 자라는 작은 키의 나무이다. 꽃잎은 퇴화하고 분홍색 실 같은 긴 수술이 붉은 빛을 강하게 내어 전체적으로 붉은 꽃으로 보인다. 자귀나무는 지금부터 산, 길가, 공원 등에서 쉽게 만날 수 있을 것이다. 한 달 남짓 꽃의 화려함을 자랑하고 나면 두 줄로 촘촘히 서로 마주보기로 달리는 잎이 시선을 끌 것이고, 10월이면 콩 꼬투리 모양의 열매가 주렁주렁 달려 가을바람에 달가닥달가닥하는 소리에 마음을 뺏길 것이다.  

자귀나무는 외국에서 들어온 듯 화려한 꽃을 가졌지만 이름은 지극한 토속적이다. 나무를 깎는 연장인 ‘자귀’의 손잡이를 만드는데 자귀나무를 썼기 때문에 붙여졌다고 하고, 잠자는 시간을 귀신같이 맞춘다고 하여 자귀나무라고도 한다. 또 ‘잠자기의 귀신 나무’라고 그 특징을 살려 이름 붙였다고도 한다. 이 뿐만 아니라 소가 자귀나무의 잎을 잘 먹기 때문에 ‘소쌀나무’라고도 한다.

자귀나무의 또 다른 이름은 ‘사랑나무’이다. 깃털 모양의 나뭇잎이 낮에는 활짝 펼치고 있다가 밤이 되면 잎새가 서로 합해져서 꼭 껴안은 듯한 모습을 연상시키므로 옛사람들은 합환수(合歡樹), 합혼수(合婚樹), 야합수(夜合樹)라고도 불렸다. 이런 연유로 산과 들에서 자라는 자귀나무를 집안에 정원수로 심기 시작했다.

왜 자귀나무의 잎은 밤에 합치는 것일까? 이런 현상을 수면운동이라 한다. 수면운동은 잎자루 아래의 약간 볼록한 엽침의 통제로 이루어지는데, 빛의 강약이나 자극을 받으면 엽침 세포속의 수분이 일시적으로 빠져나오면서 잎이 닫히고 잎자루는 밑으로 처지게 된다. 자신의 약점을 극복하고 스스로 자신을 지켜가는 게 참 오묘하다. 

옛사람들은 자귀나무를 ‘장마를 예고하는 나무’라고도 불렀다. 자귀나무의 마른 가지에 싹이 트면 곡식을 파종하고, 첫 꽃이 필 때는 팥을 심었다. 피어난 자귀나무 꽃망울이 만발하면 그 해 팥농사는 풍년일거라 점쳤고, 어김없이 그 즈음에 장마가 시작되었다. 

이렇듯 우리 삶과 가까이 와 있는 자귀나무에 얽힌 전설도 사랑나무라는 예명처럼 부부간의 사랑과 관련된 이야기가 많다. 조 씨의 어느 현명한 아내는 단옷날 자귀나무 꽃을 따다 말려 베개 밑에 넣어 두었다가 남편의 마음이 좋지 않을 때면 조금씩 꺼내어 술에 넣어 주곤 했다. 그 술을 마신 남편은 곧 전과 같이 명랑해졌다고 한다. 아내를 두고 다른 술집 여인에게 빠져 집에 돌아오지 않는 남편을 자귀나무 꽃으로 돌아오게 한 장고의 아내 이야기도 있다. 

자귀나무는 중국이 원산으로 알려져 있지만, 우리나라에는 또 다른 종류의 자귀나무가 있다. 전남 목포 유달산 및 제주도에서 자생하는 ‘왕자귀나무’가 그것인데, 자귀나무와 비슷하지만 나뭇잎이 더 크며 꽃의 수술이 많고 꽃 색깔이 더 희다. 곧 장마 시작이다. 우울해지기 쉬운 마음, 자귀나무의 분홍 수술을 보면서 건강하게 여름을 지내보자.

▲ 박남희 (숲해설가 / 교육희망사천학부모회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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