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삼문학제 특강 ‘누이를 부르는 시간’ 개최
남진우 시인 “시인들이 ‘누이’에 빠진 이유는...”

▲ 특강중인 남진우 시인

시에 자주 등장하는 ‘누이’는 어떤 의미를 지니는 걸까? 시인 박재삼의 ‘누이’가 다른 시인들에게 미친 영향은 얼마나 될까? 조금은 뜬금없는 이런 질문이 문학인들에게 던져졌다. 제20회 박재삼문학제 일환으로 개최된 세미나에서다.

이번 세미나의 좌장을 맡은 이는 남진우 시인이다. 그는 6월 23일 박재삼문학관 세미나실에서 ‘누이를 부르는 시간’이란 주제로 특강을 했다. 남 시인은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문인으로, 현재 명지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이다.

남 시인은 세미나의 주제로 ‘누이’라는 시어를 뽑았다. 누이는 박재삼 시인의 시 <밤바다에서> 등 다수 작품에 등장한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박재삼에겐 실제로 누이가 없다. 허구의 존재를 시 속에 불러낸 것이다.

 

박재삼 / 밤바다에서

누님의 치맛살 곁에 앉아
누님의 슬픔을 나누지 못하는 심심한 때는
골목을 빠져나와 바닷가에 서자

비로소 가슴 울렁이고
눈에 눈물 어리어
차라리 저 달빛 받아 반짝이는 밤바다의 質定할 수 없는
괴로운 꽃비늘을 닮아야 하리.

天下에 많은 할말이, 天下의 많은 별들의 반짝임처럼
바다의 밤물결되어 찬란해야 하리.
아니 아파야 아파야 하리.

이윽고 누님은 섬이 떠 있듯이 그렇게 잠들리.
그때 나는 섬가에 부딪치는 물결처럼 
누님의 치맛살에 얼굴을 묻고
가늘고 먼 울음을 울음을
울음 울리라.

남 시인은 “우리는 흔히 ‘소설은 거짓을 꾸며낸 이야기며, 시는 진실에 뿌리를 두고 노래한다’는 고정관념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소설이 진실을 바탕으로 쓰일 수 있듯, 시 또한 거짓을 노래할 수 있음을 강조하기 위한 설명이다. 시인들이 직접 경험하지 않았어도, 독서나 간접 체험으로 그것을 시 속에 풀어낼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러면서 그는 한국의 시 문단이 한 세대동안 푹 빠져있던 ‘누이’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냈다.

남 시인의 설명에 따르면, 한국문학은 20‧30년대부터 남성들이 주도했다. 가뭄에 콩 나듯 여성 문인들이 있었으나 머릿수의 차이를 극복할 순 없었단다. 그러기에 대부분 남성의 입으로 시를 노래했다.

남 시인은 “이들은 욕망을 풀어내는 존재로 ‘님’이라는 시어를 사용했다”며 “남성의 문학이던 그 시절 ‘님’은 당연히 여성의 이미지였다”고 말했다.

“님의 이미지는 아주 고귀하다. 님은 사모의 대상이자 충성의 대상, 절대적인 존재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시인들은 좀 더 가볍게 노래할 시어가 필요했는데, 그렇게 등장한 게 ‘누이’다. 누나는 곁에 있으면서도 약간의 거리를 유지하는, 아련하면서도 애틋한 존재(물론 시 속에서)여서, ‘님’에서 ‘연인’으로 넘어가는 그 중간역할로 가치가 있었던 거다.”

그는 누나가 없었던 박재삼 시인이 시적 허구로 시에 ‘누이’를 자주 등장시킨 것이 다른 시인들에게 영향을 크게 줬다고 주장했다. 시적 허구로서의 ‘누이’는 박 시인의 작품 <밤바다에서>, <봄바다에서> 등에 나타난다는 게 남 시인의 설명이다.

특히 <봄바다에서> 시에 등장하는 ‘남평 문씨 부인’ 또한 만들어낸 인물이란다.

남 시인은 “여성의 희생을 당연시하지 않는 시대가 오며 한국시의 ‘누이’ 이미지도 많이 변화했다”고 덧붙이며, 시 속에 등장하는 ‘누이’에 관한 물음과 답을 끝냈다.

강연이 끝난 뒤엔 한 시민이 박재삼의 시를 낭독했고, 참석자들은 함께 시를 들으며 세미나를 마무리했다.

▲ 특강을 듣고 있는 사천 시민·문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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