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접시꽃.

길가에 분홍 자주 흰색 등 접시꽃이 한창이다. 뜨거운 햇살이 내리쬐지만 아랑곳 않고 꼿꼿하게 서 있다.

접시꽃은 9월쯤 맺는 열매의 둥근 모양이 접시를 닮았고, 꽃의 모양도 접시를 닮아서 이름 붙여졌다. 자세히 보면 접시꽃은 위도 아래도 아닌 옆을 바라보며 피어있다. 그래서 눈 맞추기가 좋아 꽃을 속 깊이 관찰할 수 있다.

접시꽃은 2미터까지 자라고, 줄기는 원통모양이며 녹색이고 털이 있다. 꽃은 6월에 주로 피고 꽃잎은 5개로 나선상으로 붙어있다. 가느다란 줄기에 커다란 꽃이 아래쪽에서 피어 위로 올라간다. 그 큰 꽃무리를 어찌 버티나 싶어도 바람 불면 바람에 이리 저리 흔들릴 뿐 신기하게 접히지는 않는다.

 

접시꽃하면 무엇이 연상되는가? 열에 아홉은 도종환 시인의 ‘접시꽃 당신’이라고 답하지 싶다. 한때 읽고 또 읽으며 한두 번 눈물 찍어내었던 바로 그 시. 어릴 적 시골에는 접시꽃이 많았다. 마을의 어귀, 길가 또는 담장의 안팎에 흔하게 볼 수 있었다. 할머니들이 접시꽃을 유난히 좋아했다고 한다. 밭일과 논일이 많은 계절에 피어난 접시꽃을 보며 고된 노동의 시름을 달랬을까, 아니면 접시가 귀했던 시절 접시를 닮은 꽃으로 대리 만족을 했을까, 그것도 아니면 꽃처럼 어여쁜 젊은 시절을 떠올렸을까? 알 수는 없지만 다양한 색깔의 접시꽃이 사람들의 시선을 끌기에 충분하다.


접시꽃의 또 다른 이름은 촉규화(蜀葵花)이다. 삼국지에 등장하는 유비가 세운 촉나라에 많이 피었기 때문인지, 그때부터 흔하게 볼 수 있어서 그런지 하여튼 재미있는 한자이름이다. 우리나라에는 신라시대 최치원이 당나라에서 유학하던 시절에 지었다는 촉규화(蜀葵花, 접시꽃)라는 시가 있다. 어떤 마음으로 이 시를 썼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학문을 마치고 성공해서 고향으로 돌아가기까지 타국에서의 어려움을 시에 담아내지 않았나 싶다.


“적막한 거친 밭 가장자리
무성한 꽃이 연약한 가지를 누르누나 
유월장마비 그치니 향기 날리고
보릿바람에 그림자 기울어지네
수레와 말탄자들 누가 보아주리오
벌 나비의 무리들만 서로 엿보네
천한 땅에 태어난 부끄럼으로부터
사람에게 버려져 남겨지는 한을 견디는도다”


조선시대 문무과에 급제한 사람에게 임금이 하사하던 꽃을 ‘어사화’라고 한다. 이 어사화가 바로 접시꽃이었다. 통상 꽃은 줄기 맨 위에서 아래로 꽃을 피우는데, 접시꽃은 줄기 밑에서부터 위로 피어 올라가기 때문에 벼슬도 아래 단계부터 위로 차례로 차근차근 올라 훌륭한 관리가 되라는 의미이다. 그래서 옛날에 자식이 급제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마당에 이 접시꽃을 많이 심었다고 하니 자식의 입신양명을 바라는 부모의 마음을 엿볼 수 있다.


뜨거웠던 지방선거도 끝이 났다. 단계를 밟아 올라가는 공무원은 아니지만 선출직 공직자로 뽑힌 사람들이 접시꽃에 담긴 의미처럼 시민을 위한 정책을 잘 실현해주기를 바랄뿐이다. 멀리서보면 무궁화꽃 같기도 한 접시꽃. 내일은 가던 길 잠시 멈추고 길가에 손님을 맞이하듯 화사하게 핀 접시꽃을 아이들에게 보여주면 좋겠다.

▲ 박남희 (숲해설가 / 교육희망사천학부모회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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