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석류나무.

어느 식당 담벼락 앞에서 걸음을 멈추고 폰을 꺼내 사진을 찍었다. 푸른 잎 사이에서 유난히 붉게 피어있는 꽃이 순간 시선을 끈 탓이다. 석류나무 꽃이다. 

석류는 따뜻한 곳을 좋아하여 남부지방에서 잘 자라는 키작은 낙엽나무이다. 5‧6월 꽃이 피고, 9‧10월이면 어른 주먹만 한 열매가 달린다. 

특히 석류는 여성 호르몬과 유사한 성분인 식물성 에스트로겐이 많아 여성에게 좋은 과일로 알려져 있다. 양귀비나 클레오파트라도 미용을 위해 매일 석류를 먹었다고 하니 근거 없는 얘기는 아니지 싶다. 이를 놓치지 않고 ‘미녀는 석류를 좋아해’라는 음료를 만들어 히트를 친 회사가 있다. <동의보감>에 보면 석류는 ‘성질이 따뜻하며 맛이 달고 시며 독이 없다. 목 안이 마르는 것과 갈증을 치료하는 약재로 쓰인다’라고 했으니 음료회사의 상술이 놀랍다.  

석류는 오늘날의 이란 지방이 원산지이며, 중국을 통하여 우리나라에 들어왔다. 이란의 옛 이름이 페르시아이고 중국식으로 표기하면 안석국(安石國)이다. 하여 흔히 석류를 ‘안석류’라고 한다. 문헌상으로는 <고려사>에서 첫 기록을 찾을 수 있지만, 통일신라시대에 만들어진 도자기 문양에 석류 모양이 있는 것으로 보아 이미 7세기 이전에 수입된 것으로 추정한다. 

‘홍일점’이라는 말이 있다. 이는 석류나무에서 비롯된 말이다. 석류나무의 꽃은 길고 작은 종(鐘)모양을 이루며, 여섯 장의 꽃잎이 진한 붉은빛으로 핀다. 이런 꽃 모양을 보고 송나라의 왕안석은 “짙푸른 잎사귀 사이에 피어난 한 송이 붉은 꽃”이라고 노래했다. 석류나무의 많은 잎들이 남성들이라면 그 속에서 유난히 도드라지는 붉은 꽃이 여성이라는 것이다.

석류는 안에 많은 씨가 들어 있어 다산(多産)을 상징한다. 조선시대 귀부인들의 예복인 당의, 왕비의 대례복, 골무, 안방가구 등에 석류모양이 많고, 비녀머리를 석류꽃 모양으로 새긴 석류잠(石榴簪)을 꽂았는가 하면 귀부인들이 차고 다니던 향낭(香囊)은 석류나무 열매 모양으로 만들었다. 그러고 보니 이래저래 석류는 여성들과 관련이 깊다. 

인도의 전설에는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옛날 자기 새끼를 1천명이나 가진 마귀할멈이 살았다. 마귀할멈은 잔인하게도 사람들의 아이를 보기만 하면 잡아먹었다. 참다못한 아이의 엄마들은 부처님에게 달려가 하소연했다. 부처님은 마귀할멈의 새끼 중 한 마리를 골라 몰래 숨겨버렸다. 그러자 마귀할멈은 자기 새끼가 없어진 것을 알고 미친 듯이 찾아 헤매다가 비로소 자식을 읽어버린 슬픔이 어떤 것인지 알게 되었다. 부처님은 다시는 아이들을 잡아먹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고 새끼를 돌려주면서, 아이 대신 석류를 주었다. 그러자 마귀할멈은 참회의 눈물을 흘리면서 어디론가 멀리 떠나 버렸다고 한다.

요즘 석류나무 꽃이 한창이다. 석류 열매를 먹기 위해서 심었지만 그 열매는 신맛이 강한 나머지 잘 먹지 않는다. 그냥 추억을 위해 열매를 딸 뿐이다. 대신 마트에서 파는 이란산 석류를 먹는다. 그래서 최근에는 꽃을 보기 위해 관상수로 석류나무를 심는 경우가 많다. 이웃 진주시의 시화가 석류꽃이다.

▲ 박남희 (숲해설가 / 교육희망사천학부모회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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