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느티나무

얼음물을 찾는 횟수가 늘고 에어컨을 켤 준비를 한다. 6월, 바야흐로 여름 시작이다. 올해는 어떻게 견디나 벌써 걱정이 앞선다. 다음 광경을 떠올리면 좀 시원해지려나 싶다. 짙게 드리운 나무 그늘 아래 살갗을 스치듯 살랑살랑 잔바람을 느끼며 두 팔 벌려 누워있는 모습 말이다. 그런데 왠지 익숙한 풍경인 것 같지 않은가?

어릴 적 여름 방학이면 시골 할머니 집 마을 입구에서 마주했던 광경. 어른이 된 요즘엔 시골길을 가다 보게 되는 마을 입구에 떡하니 서있는 아름드리 큰 나무 아래 평상을 두고 어른들이 막걸리 한 사발 걸치고 있는 광경. 그 광경 연출의 대표적인 나무를 소개하려고 한다. 쉼터를 제공하는 정자나무이고, 마을의 안녕과 평안을 기원하는 제사를 지내는 당산나무인 느티나무이다. 농사일에 지친 사람들의 안식처이며, 마을의 크고 작은 일을 결정하는 여론 광장이 되기도 하니 마을 공동체를 유지시켜주는 구심체 역할을 톡톡히 하는 셈이다.

느티나무는 우리나라 어느 곳에서나 잘 자라는 나무로 수형이 아름답고 잎이 단정하다. 한여름에 나뭇가지를 좌우로 넓게 펼쳐 촘촘하게 햇볕을 가려 짙은 그늘을 제공하다가 가을이면 예쁜 단풍을 물들인다. 노랗고 붉게 물든 잎을 책 사이에 끼워 말리면 자연물 책갈피가 된다. 느티나무는 참 오래 사는 나무이다. 고목이다 싶으면 보통이 몇 백 년이고 천 년을 넘긴 느티나무도 있다. 오래 사는 나무인 만큼 사연과 전설도 많다.

그 중 대표적인 것 한 가지만 소개하자면 612년(신라 진평왕 34년), 찬덕이라는 신라 장수는 지금의 충북 괴산 근처에 있던 가잠성의 성주였다. 어느 날, 백제군이 쳐들어와 성을 잃게 되자 그대로 달려 나가 느티나무에 부딪쳐 죽었다. 이 후 가잠성을 ‘느티나무 괴(槐)’자를 써 괴산이라 부르게 했고, 오늘날 괴산군 보호수로 지정된 느티나무만 90여 그루에 이른다.

왠지 외래어 같은 느티의 어원은 느티나무가 지닌 신성(神性)의 어떤 징조라는 뜻의 ‘늦’과 수목 형상이 위로 솟구친다는 뜻인 ‘티’가 어우러져 생겨났다고 하며, 늘 ‘티’를 낸다고 하여 느티나무가 되었다는 얘기가 있다. 또 ‘노랗다’, ‘누렇다’는 뜻에서 유래된 이름이라고도 한다. 숲놀이에서 만나는 아이들에게는 ‘늙은 티가 난다’고 하여 느티나무라 부른다고 말해준다. 느티나무는 오래살고 벌레가 없어 2000년 밀레니엄나무(새천년나무)로 선정되었다.

사천에서도 느티나무는 쉽게 만날 수 있다. 그 중 사남면 연천마을의 연천숲에 가면 느티나무 28그루, 팽나무 21그루, 말채나무 8그루가 있다. 연천숲은 풍수 사상에 따라 터가 허한 곳에 숲을 조성한 전형적인 인공 비보림(裨補林)이다. 바람을 막고, 경치를 더해주며 마을 사람들의 쉼터 역할을 500년 전부터 연천숲의 느티나무가 하고 있다.

폭염주의보 문자를 받거든 숲으로 들어가 보라. 숲은 바깥보다 4~5도 정도 온도가 낮다. 바람까지 불어주면 금상첨화다. 미세먼지도 잡아준다고 하니 에어컨도 좋지만 숲속 나무 그늘 아래도 더위를 식히기엔 괜찮을 것이다. 숲속 곤충들은 아이들의 친구가 되어줄 것이다. 도시락을 준비해서 가면 반나절은 쉬고 올 수 있다. 올 여름은 천연에어컨을 잘 이용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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