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찔레꽃.

산의 초입, 도로가 옆, 주택가 돌담 등 요즘 한창 흰꽃을 피우고 향기를 뿜으며 존재감을 드러내는 나무가 있다. 장미인가 싶어 보면 찔레다. 하여 ‘한국의 들장미’라 애칭 한다. 키작은 나무라 손을 뻗어 가지를 잡으니 가시에 움찔, 사진을 찍으려니 벌이 방해를 한다. 꿀이 많다는 얘기다.

찔레는 줄기에 가시가 많아서 잘 ‘찌르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다. 요즘엔 보기 어렵지만 주택 울타리에 쳐진 뾰족한 철선이 바로 소나 양이 찔레를 피해가는 모습을 보고 만들었다고 한다. 분명 찔레도 우리네 삶과 관련이 깊은 친근한 꽃이다. 그래서인가? 찔레는 노래와 시에 많이 등장한다. 대표적으로 ‘찔레꽃 붉게 피는 남쪽나라 내 고향~’으로 시작되는 노래가 있다. 어라 찔레꽃이 붉어? 굳이 설명하자면, 지방명이 찔레인 남해안 바닷가에 주로 피는 붉은 해당화 꽃을 보고 작사가가 찔레라 하지 않았나 싶다. 다른 하나는 원래 찔레꽃은 하얀 꽃이지만 토양조건이나 개체에 따라 연한 분홍빛을 띠는 경우가 드물게 있어서 그렇다. 중요하지 않다. 노래 그대로의 분위기를 느끼고 즐기면 그만이다.

‘아프다 아프다 하고 아무리 외쳐도, 괜찮다 괜찮다 하며 마구 꺾으려는 손길 때문에, 나의 상처는 가시가 되었습니다’라는 이해인 수녀의 시가 있다. ‘하얀 꽃 찔레꽃 순박한 꽃 찔레꽃, 찔레꽃 향기는 너무 슬퍼요’ 가수 장사익의 노래도 있다. 그리고 나는 가수 이연실이 부른 노래의 가사를 조용히 읊조려본다.

엄마 일 가는 길에 하얀 찔레꽃
찔레꽃 하얀 잎은 맛도 좋지
배고픈 날 가만히 따 먹었다오
엄마 엄마 부르며 따 먹었다오

시도 노래도 제목은 모두 ‘찔레꽃’이다. 아픔과 슬픔, 배고픔이 묻어난다. 찔레꽃의 슬픈 전설 때문인가 싶다. 고려가 원나라의 지배를 받을 때의 이야기다. 당시 고려에서는 ‘공녀’라 하여 해마다 어여쁜 처녀를 원나라에 바쳤다. 그 때 공녀로 끌려간 ‘찔레’라는 여자아이가 있었는데 고향과 부모를 그리워 하다가 우여곡절 끝에 10년 만에 고향 마을로 돌아온다. 하지만 그리운 가족은 온데간데없고 결국 애타게 가족을 찾다가 어느 산길에 쓰러져 죽게 된다. 봄이 되자 찔레가 쓰러진 외로운 산길에 하얀꽃이 피어나니 사람들은 그 꽃을 ‘찔레’라 불렀다.

의외로 찔레는 따스한 햇살을 좋아한다. 5‧6월 모내기가 한창일 때, 햇살 가득 길가 양지바른 돌무더기는 찔레가 가장 즐겨하는 자람 터다. 찔레는 덩굴성은 아니지만 긴 줄기를 내며, 돌무더기를 포근하게 감싸며 하얀꽃을 드러내고 달콤한 향기를 뿜어낸다. 그것이 꼭 흰옷을 즐겨 입고, 흰밥을 갈망했던 우리 민족의 정서를 반영하는 것 같다.

찔레 가시가 좀 사납긴 해도 9월에 익는 콩알 같은 붉은 열매는 새들의 든든한 먹이로 최고다. 이번 주말 아이들에게 찔레 새순 꺾어 주며 찔레 얘기를 해주자. 장미와 다른 또 다른 맛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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