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나무 꽃

우리의 일상에서 가장 흔하게 만나는 나무가 무엇일까? 소나무라고 말해도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낮고 높은 산 어김없이 소나무가 사계절 푸르게 버티고 있고, 정동면 대곡숲이 그러하듯 인공으로 조성한 숲도 소나무 숲이 많다. 개인 주택이며 아파트에 정원수로도 빠지지 않고 심는 게 소나무이다. 숲놀이에서 만나는 아이들도 소나무는 안다. 굴리고, 던지며 노는 솔방울은 숲놀이의 가장 재미있는 자연물도구이다.

태초부터 소나무는 우리 민족과 가까웠다. 소나무가 한반도에 자라기 시작한 것도 6천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고, 3천 년 전부터는 많이 자라기 시작하였다고 추정하니 말이다.

유난히 햇빛을 좋아하는 소나무는 햇빛만 풍족하면 땅이야 좀 척박해도 잘 자라는 특성이 있어 한반도에 점차 자신의 자람터를 넓혀가기 시작했다. 최고의 전성기는 조선왕조가 중앙집권국가의 기틀을 다지기 시작하면서부터다. 궁궐이나 관아의 건축물 재료와 조선시대 관재(棺材)로 소나무가 쓰였다. 기록에 의하면 임진왜란 승리의 혁혁한 공을 세운 거북선의 뱃몸 대부분은 소나무로 만들었다.

가까운 남해에 노도(櫓島)라는 섬이 있다. 서포 김만중의 유배지로 알려진 곳인데, 노(櫓)자가 바로 배 젓는 기구를 말한다. 노도에서 노를 많이 만들었으니 노도라는 이름이 붙었을 테고, 이 때 노의 재료가 바로 소나무였다. 조선 왕조는 쓰임새 많은 소나무를 보호하기 위해 벌채를 금하는 법을 만들면서까지 소나무를 지키려 노력했다.

그러나 조선 후기로 가면서 숲은 점점 황폐화되어 버렸다. 특히 일제 강점기 때 우리의 소나무는 무자비하게 수탈을 당하는 운명에 처해졌다. 줄기가 곧고 껍질이 유별나게 붉은 금강소나무(일명 ‘춘양목’)가 대표적 희생양이었다.

높고 으뜸이라는 뜻의 ‘수리’에서 출발한 소나무.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나무라는 산림청 통계가 있다. 당연하다. 한 생명의 탄생을 알리는 금줄에 솔가지가 끼워지고, 소나무로 지은 집에서 살며 소나무로 불을 지핀다. 송홧가루로 다식을, 명절엔 송편을 만들어 먹고, 소나무가 그려진 병풍을 치고 잠을 청한다. 뒷동산 소나무 숲에서 잘 쉬다가 한 생이 끝나면 소나무로 만든 관 속에 들어가 영원한 휴식에 든다. 초근목피(草根木皮)라는 말이 있다. 풀뿌리의 대표는 칡이며, 나무껍질의 대표는 소나무이다. 배고픔을 달래기 위해 소나무 속껍질을 벗겨 먹은 게 그리 오래된 일도 아니다. ‘똥구멍이 찢어지게 가난하다’는 말이 있다. 소나무 껍질을 먹고 소화를 잘 시키지 못하여 변비가 생기는 현상에서 온 말이라고 하니, 시쳇말로 웃프다. 이래저래 소나무는 우리의 삶과 인연이 깊다.

요즘 아침에 집을 나서면 차 위에 노란 송홧가루가 쌓여있다. 소나무 수꽃에서 내뿜는 송홧가루의 양이 엄청나다 보니 알레르기의 주범으로 몰리고 있는데 사실은 오해가 좀 있다. 결론부터 말하면 소나무 꽃가루가 알레르기의 직접적인 원인은 아니며, 흡입하더라도 코에서 걸러져 폐까지 내려가지 않는다. 오히려 꾸준히 섭취하면 인체의 노화와 각종 질병을 예방하고 개선하는 효과가 있다 하니 최근에는 당양한 식재료로 이용되고 있다.

토종 소나무부터 곰솔, 반송, 백송, 금강소나무, 리기다소나무 등 소나무 가문의 대표적 소나무를 만나거든 긴 세월 우리와 함께 해온 것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거북등 같은 소나무 껍질을 한번 어루만져 주시라.

저작권자 © 뉴스사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