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는 사천]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 「사랑하지도 않으면서」다케히사 유메지 지음/ 정은문고 / 2016

「그대여. / 당신이 내게 “어떤 존재였는지”는 / 우선 당신 말대로 하도록 해요. / 하지만 “어떤 존재가 아니었는지”를 묻는다면 / 간단히 말해드리죠. / “세상에 차고 넘치는 나쁜 남자가 아닌 대신 / 좋은 남자도 아니었다”고」

때로는 첫사랑에 빠진 불안정한 여자, 혹은 사연 많은 성숙한 여자, 그리고 가끔씩은 세상의 모든 것을 사랑하게 된 달관한 노인이 쓴 듯한 예민한 문장들로 가득한 책이다. 이 섬세하고 세련된 책의 저자가 1884년부터 1934년까지 살다간 오래전 사람이라는 사실도 놀랍지만, 여자가 아닌 남자라는 반전에도 그 매력이 배가된다.

이 책의 저자 ‘다케히사 유메지’는 일본 근대의 낭만적 시기에 그림, 디자인, 광고, 르포, 시, 산문 등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했던 전방위적 예술가다. 덕분에 책을 펼치면 아련한 문장에 곁들여진 유메지 특유의 독특하고 세련된 일러스트들도 함께 감상할 수 있다.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어진 이 책의 전반 1부 ‘사랑하고’에서는 설렘과 어려움이 혼재된 사랑의 감정에 대한 짧은 시와 유명한 ‘유메지식 미인도(美人圖)’가 주를 이루고 있다. 그리고 2부 ‘여행하고’에서는 그가 지친 마음을 달래기 위해 떠났던 유럽여행에서의 풍경과 여정이 짧은 산문으로 담겨 있다. 유메지 특유의 쓸쓸하고 몽환적인 감성에 인간의 내면을 관통하는 날카로운 통찰이 덧대여져 전반부를 이끌고 있다면, 후반부는 세상의 다양한 모습을 여러 관점에서 바라보는 근대 지식인의 사변도 드러낸다.

「“달이 참 예쁘네”하고 그녀가 말할 때 / 고개를 들어 달을 보는 남자는 바보다.」

바보 같은 남자처럼 인생을 소비하고 있지는 않을까 문득 생각해본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사랑꾼이자 예술가였던 이의 비범한 직관과 감성 그리고 재능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이 책은, 삶의 행간(行間)을 읽어내고 다채로운 조각들로 일상을 채울 수 있는 감각적인 자극들로 풍만하다. 삶을 예술처럼 녹여내는 아티스트가 되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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