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창섭 삼천포여고 교장 / 시인

4:37:55. 몸과 마음을 허물고 추스르고 달래며 겨우 겨우 마라톤 풀 코스를 처음 완주하여 얻은 기록입니다. 혹여 사람들은 보잘것없고 가벼이 여길지라도 저에게는 무척 값지고 소중한 시간이었지요. 네 시간 반이 넘도록 길 위에서 펼친 행위 예술은 진지한 자아성찰의 기회이기도 했습니다.

세상에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운동 경기가 있습니다. 그 중에는 특히 희귀하고 생소한 종목들도 있는데 몇 가지 경기 이름만 소개해 보겠습니다. 카바디(Kabaddi), 스노우카이팅(Snowkiting), 고스트라(Gostra), 보사볼(Bossaball), 테니퐁(Tennipong), 플라잉디스크(Flying disc), 와이프캐링(Wife carring) 등.

지구상에서 펼치는 이 모든 운동들 가운데 단일 종목으로 가장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는 경기는 단연 마라톤일 겁니다. 대회마다 편차는 있지만, 적게는 몇 백 명에서 많게는 몇 만 명이 동시에 참가하여 달리는 모습은 어마어마한 장관을 이룹니다. 시 전체가 축제 분위기를 연출하는 대회도 있습니다. 물론 이때 참가자들은 단순한 마라톤 옷차림이 아니라 저마다 멋과 끼를 갖추고 독특한 복장으로 개성을 표출하며, 응원하는 시민들과 함께 환호하고 춤추며 마음껏 즐깁니다. 그들에게 기록이란 별 의미가 없지요. 스스로 대회의 주체가 되어 낭만적이고 낙천적인 모습을 나누는 것만으로도 한껏 기쁘고 행복해 합니다.

그렇다면 동서양을 막론하고 그 숱한 남녀노소들이 왜 이렇게 쉽지 않은 달리기를 하는 것일까요. 땀을 뻘뻘 흘리면서 숨이 턱까지 차올라 헉헉거리며 뛰는 데에는 그만한 사연이 있겠지요. 저의 경우를 중심으로 까닭 캐기를 해 보겠습니다.

제가 뛰는 가장 첫 번째 이유는 건강 추구 때문이었습니다. 술에 찌들어 망가진 몸을 일으키기 위해서는 기초 체력을 다져야 했지요. 처음 삼천포종합운동장을 한 바퀴씩 뛰다가 차츰 횟수를 늘린 것이 계기가 되었습니다. 두 번째는 호기심과 도전 정신이었습니다. 하루는 텔레비전을 보는데 마라톤 대회 선전 광고가 나왔습니다. 순간 바로 저거구나, 직감했지요. 지금껏 겪지 못한 새로운 영역에 뛰어들고픈 개척 의지라고나 할까요.

세 번째는 기분 전환이었습니다. 현대인에게 가장 무서운 질병 요인은 강박관념(stress)이라고 합니다. 더군다나 사람과의 관계에서 부딪치는 심리적 불확실성과 불안감은 예고 없이 찾아옵니다. 이를 떨치려는 해방구가 필요한 탓이었지요. 네 번째는 회고와 자아 성찰을 통해 이야깃거리를 찾는 일입니다. 잠시 세속의 번뇌에서 일탈하여 자신의 본질을 모색하고, 교육, 문학, 문화, 사회 현상 등에서 존재 가치를 헤아리며 글의 소재를 찾고 또 글을 쓰는 것입니다. 다섯 번째는 새로운 만남이 주는 희망 노래였습니다. 길 위에서 많은 이들을 만납니다. 달리기가 맺어준 인연이지요. 그들과 동행하며 경험하거나 생각하지 못한 낯선 인생사를 편안하게 주고받는 것은 신선도가 높은 강의입니다.

마지막으로 자신감 획득입니다. 어렵고 힘든 과정을 역경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극복했을 때 얻는 희열은 무한한 우주를 한 손아귀에 거머쥔 듯 강렬합니다. 가슴 뿌듯한 기쁨은 그대로 생활에 반영되어 크나큰 활력소가 되면서 굳센 자신감으로 승화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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