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선한의 영화이야기

▲ 영화 포스터

레슬링 선수인 아들이 마음에 두고 있던 그녀에게 사랑을 고백하려는 순간 그녀가 먼저 고백을 한다. 그가 아니라 그의 아버지를 사랑한다고. 아버지는 사랑 때문에 국가대표 선발전을 포기한 전직 레슬링 선수로, 아내를 잃고 아들만 바라보며 사는 헌신적인 가장이다. 아들에게 해가 되는 일이라고는 쥐똥만큼도 할 생각이 없다. 그런데 이놈의 아들이 사랑을 이유로 레슬링을 하지 않겠다고 한다.

가정의 달 5월이라 그런지 가족영화가 쏟아진다. 팔씨름을 소재로 한 영화가 지난주에 개봉하더니 이번에는 레슬링이다. 전·현직 레슬링 선수 부자(夫子)를 축으로 삼각관계 로맨스를 더하고 캐릭터 코미디와 감동의 신파까지 버무렸다. 자, 입에 들어가면 사르르 녹는 환상의 <레슬러>라는 비빔밥이 만들어졌을까.
 
실력 있는 셰프는 도무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재료도 한 데 섞어서 재료 본연의 맛을 살림과 동시에 환상의 풍미를 자아낸다고 하지만, 솜씨 없는 사람은 최고의 재료만 써서 만든 김밥조차도 엉망으로 만든다. 김맛 따로, 밥맛 따로, 재료도 따로, 모든 식재료가 제각각 따로 노는 바람에 대체 뭘 먹는지 알 수가 없다.
 
<레슬러>라는 제목처럼 감동의 스포츠를 지향하는 듯하다가, 유해진이라는 주연배우에 나문희, 성동일 등 연기파 배우들이 등장하는 걸로 봐서 캐릭터 향연일 것처럼 페이크를 취하더니 결국에는 부자간의 갈등과 화해를 그리는 가족드라마인 양 자세를 취한다. 이 모든 걸 코미디라는 장르 속에 적당히 섞어보겠다는 이도저도 아닌 이상한 스탠스 덕에 욕심만 덕지덕지 붙었다는 잔소리 듣기 좋게 생겼다. 코미디라는 양념이 아무리 향이 강하다고 하지만 맛있게 비비는 것도 분명히 기술이다. 성의 없는 젓가락질로 뒤적뒤적한다고 골고루 양념이 배여 들진 않는다. 손익분기점이 180만 명이라고 하는데 아무래도 고개를 넘기 전에 퍼질 것 같다.

최고의 조연배우는 최고의 주연배우가 될 수 있을까. 약방의 감초 격으로 조연의 위치에서 멋진 연기를 보여주던 배우 유해진이 드디어 주연으로 나섰지만 또 다시 나쁜 선례를 남겼다. 언제나 조역이던 입장에서 주어진 기회가 그리 많지 않아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거나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어찌되었건 실패사례가 자꾸 늘어가는 건 안타까운 일이다.

더불어 코미디로 시작해서 감동으로 끝내야 한다는 한국형 가족드라마의 공식이 때로는 강박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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