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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기획법과 사람
[법과 사람] 신분 세습과 부의 세습
박영식 변호사  |  webmaster@news40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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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5.16  09:4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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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이야기도 삼국지로 시작하련다. 관도대전을 승리로 이끈 조조였지만 그 역시 그 승리를 자신할 수 없었다. 관도에서 원소의 군대를 대패시킨 후 막대한 군수물자, 무기, 보물 등이 조조의 손에 들어왔는데 그 중에는 수하 장수 몇몇이 원소와 내통한 서신도 포함되어 있었다. 오늘날 우리형법에 따르면 사형만을 형벌로 정하고 있는 여적죄, 적국과 합세하여 대한민국에 대적한 죄가 되거나 최소한 간첩죄에 해당하는 행위다.

그러나 조조는 그 서신을 개봉도 하지 아니하고 모조리 불태우라고 명령했다. 은밀하게 조조를 배반하려 했던 장수들은 두려움에 떨었지만 이 일로 조조에게 더욱 충성하게 되었다. 조조는 말했다 “원소가 워낙 강하여 나조차도 몸을 보중하기 어려웠는데 그대들은 오죽하였겠는가.” 조조의 관대한 도량과 뛰어난 용인술을 엿볼 수 있는 장면이다.

그러나 조조는 잔혹하게 많은 사람을 죽인 걸로도 유명하다. 전쟁에서 적을 죽이는 것이야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오해로 여백사의 가족을 도륙하고, 부모와 그 일가의 죽음에 대한 복수로 서주의 무고한 백성 수만을 몰살하였다. 말년에는 자신에게 충성해온 부하를 자신의 뜻과 맞지 않다는 이유로 주살했는데 이는 자신의 아들 조비에게로의 안정적인 후계를 확립하기 위해서였다.

자본주의 이전의 시대는 신분이 세습되었다. 오늘날은 부가 세습된다. 부가 새로운 신분이다. 사유재산제도, 상속제도를 통한 부의 세습 등은 자본주의 시장경제질서의 기본을 이룬다. 신분질서는 생산력의 발전에 따라 새로운 신분을 낳았다. 노예는 농노를, 농노는 다시 도시노동자를.

오래 전에 들은 얘기가 있다. 농촌에서 겨우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작은 공장을 전전하다가 운 좋게 울산에 새로 지어진 큰 조선소에 일하게 된 이가 있었다. 그는 일각에서 귀족노조라고 불리는 늙은 노동자다. 그는 초등학교만을 겨우 나와 산업화시대에 조선소에서 기름복을 입었지만 자식만큼은 더 좋은 직장에서 더 좋은 대우를 받길 기대하면서 대학까지 보냈다. 그러나 그 자식은 불행이도 정작 초졸의 아비가 다니는 직장조차 갈 수 없는 시대를 살게 되었다. 그래서 그 귀족노동자들은 노동조합에 요구했다. “내가 정년퇴직하면 내 아들을 우선적으로 채용하게 하는 단체협약을 만들어 달라.”라고.

물론 나는 위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 자유로운 경쟁과 공정한 기회보장을 저해하는 것이자 전체 노동자의 단결을 해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다른 한편 이러한 생각도 들었다. 부를 세습하는 것은? 재벌일가의 세습경영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기름복 일자리의 세습엔 ‘귀족노조’라고 거칠게 몰아세우는 것은 과연 온당한가? 삼성의 영업이익이 사상최고치를 갈아치웠다는 말에는 애국심마저 발동하여 환호하는 사람들이 노동자가 임금을 많이 받는 일엔 왜 그리 심사가 뒤틀리는 것일까. 1%의 부자는 그저 동경의 대상일 뿐 나의 경쟁자가 아니라는 뛰어넘을 수 없는 신분의 벽을 스스로 인정하기 때문이 아닐까. 쥐를 사냥하는 고양이를 탓하는 것이 아니라 걸음소리를 크게 내어 고양이를 불러들인 발 큰 쥐를 탓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조조에 대한 평가는 다양하지만, 적어도 인재를 등용하고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용인술만큼은 그 당대는 물론이고 중국역사를 통틀어도 매우 뛰어났다는 것이 대체적인 견해이다. 출신과 지역, 가문과 귀천을 가리지 않고 능력 있는 사람을 귀하게 썼다. 삼국시대 내내 가장 강국이었고 이후 진을 통해 삼국을 통일한 원동력이 여기에 있다. 부가 부를 세습하고 부가 권력까지 독점하며 결코 오를 수 없는 계층의 사다리가 사회 곳곳에 깊고 넓게 존재하는 사회는 활력을 잃고, 그 존립마저 어려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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