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삼조 시인.

땅에는 봄이 왔다가 가려 하는데 사람들 마음에서는 봄이 한창이다. 매화와 벚꽃 목련이 벌써 졌고 복사꽃 진달래도 자취가 없다. 그래도 아직 영산홍과 철쭉이 남았고 모란과 작약은 진 것도 있고 피는 것도 있다. 간간이 여름 날씨가 찾아오긴 해도 아직 봄인 것은 맞다.

게다가 요즘 사람들 마음을 부추겨 이 봄을 더 봄답게 하는 것이 남북간 북미간 회담일 듯하다. 한반도 비핵화를 전제로 하여 남북간 전쟁의 일시 멈춤이나 일시 쉼의 상태를 전쟁의 마침 상태로 바꾸자는 것이고 나아가 서로 평화를 보장하는 상황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것이다. 당장이라도 전쟁이 날 것처럼 위험한 말들이 오가던 몇 달 전과는 전혀 다른 상황이다.

이런 일련의 일을 주도적 입장에서 이끈 사람들은 이 상황을 일러 ‘평화의 봄’이라 부르는 모양이다. 일부 사람들의 생각은 다른 듯하지만 대통령 지지도 등을 통해서 본 국민 여론은 이 일을 그렇게 부르는 것을 대체로 찬성하는 편에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듯하다.

이 ‘평화의 봄’에서 ‘평화’의 반대편에 선 말은 ‘전쟁’일 것이다. 전쟁이란 무엇인가. 침략하든 침략 당하든 사람을 많이 죽이는 일에 상을 주는 일이 아닌가. 하물며 같은 겨레끼리 어찌 그런 일을 생기게 할 것인가. 그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에서 벗어나는 일이니 이 남북간 북미간 회담을 반기지 않을 이 얼마나 되겠는가. 이에 반해 ‘평화의 봄’에서 말하는 ‘평화’는 서로가 더불어 잘 살자는 것이고 서로를 살려보자는 것이다. 얼마나 많이 살렸느냐에 상을 주는 것이다.

그리고 ‘평화의 봄’에서 ‘봄’은 얼어붙은 것을 녹이는 것이고 생명 있는 것에 생기를 주는 것이며 생명 있는 것들이 아름다운 세상을 노래하는 일을 상징하는 것이다. 이 ‘봄’의 상징을 가장 빼어난 솜씨로 사용한 시는 아마도 우리 역사상 가장 굴욕적 시기인 저 일제강점기의 한복판에서 이상화 시인이 쓴 시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일 것이다. 여기서 ‘빼앗긴 들’은 빼앗긴 조국 또는 국토를 상징할 것이고, 당연히 봄은 왔으나 그 봄은 빼앗긴 국토에 온 봄이니, 그 국토를 빼앗긴 사람들이 진정으로 이 봄을 즐길 수가 있겠느냐는 반문(反問)을 드러낸 시다. 그래서 이 시는 ‘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기겠네’로 마무리를 짓는다. 봄기운 뚜렷한 들판을 헤매며 빼앗긴 땅에 찾아온 봄이 진정한 봄일 수 없다며 고뇌하던 선인(先人)의 모습이 너무도 선명한 시다.
 
남북간 북미간 회담이 열리는 이 중요한 시기에 우리가 맞이할 봄은 당연히 ‘진정한 봄’이어야 한다. 백화만발(百花滿發)한 봄의 잔상(殘像)에 혹(惑)해 얼렁뚱땅 넘어갈 일이 아니다. 이 ‘봄’을 맞으며 수난의 시기에 우리 선인들이 노래하였던 ‘진정한 봄’을 찾아 우리도 함께 고뇌하고 함께 의논하며 더불어 할 일을 찾아야 한다. 우리 민족의 ‘진정한 봄’은 어떤 모습이어야 할 것인가.
이 좋은 ‘봄날’을 그냥 보낼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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