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까시나무꽃.

늦봄이나 초여름에 새로 나온 잎의 연한 초록빛을 신록이라 한다. 5월, 바야흐로 신록의 계절이다. “꽃 같은 속잎들이 피어나 연녹색 나비같이 팔랑이니 할 일은 많은데 신록에 끌려 일이 안됩니다.” 바쁜 일상을 사는 사람들의 외침이다. 잠시 가던 길 멈추고 숲으로 들어가 보자.

그 신록 한가운데 유난히 청량한 꽃향기로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 나무가 있다. 분명 익숙한 향인데 싶어 킁킁하니 ‘아까시나무’다.

‘아까시’라고? ‘아카시아’ 아닌가? 결론은 아까시나무가 맞다. 진짜 아카시아나무는 따로 있다. 아프리카 더운 열대지방에서 주로 자라는 잎이 지지 않는 늘푸른나무로 우리나라에서는 자라지 않는다. 그동안 우리는 전혀 별개인 나무를 고집스럽게도 잘못 불러왔다.

숲해설을 하다보면 이런 말을 종종 듣는다. “아까시라고 부르면 왠지 느낌이 살지 않아요.” 나도 그렇다. 아카시아 이름이 더 익숙하니 어찌하랴. 그 이유는 추억이 많은 나무이기 때문이다. 어릴 적 많이 먹었던 한 제과회사의 껌 이름이 아카시아였고, ‘동구 밖 과수원길 아카시아 꽃이 활짝 폈네’ 노래 가사가 너무 자연스럽다. 학교 길에 아까시나무 잎을 떼며 가위바위보 하고 놀았던 기억도 있고, 아까시나무 꽃으로 화전과 튀김, 꽃잎주 등을 만들어 먹는 미식가도 있다.

북아메리카가 고향인 아까시나무가 1890년 중국을 거쳐 일본인의 손을 통해 인천으로 들어왔다. 일제시대에 산을 긴급히 녹화하기 위해 심기 시작했지만 대대적으로 아까시나무를 심은 것은 전쟁 이후인 1960년대부터이다. 먹거리와 땔감으로 산의 나무가 무자비하게 잘려나가니 깊고 푸르렀던 산이 어느새 민둥산으로 변해버렸다.

더 이상 손 놓고 있을 수가 없었다. 계획적이고 체계적인 ‘산림녹화’ 사업으로 심기 시작한 나무에는 아까시나무 외에도 리기다소나무, 사방오리나무, 족제비싸리가 있다. 이 나무들은 양분이 부족한 토양에 뿌리가 잘 내리고, 빨리 자라며, 땔감을 공급하기 유리하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렇게 아까시나무는 황폐한 산에 자리를 잡고 다른 나무들이 잘 자랄 수 있게 산림토양을 비옥하게 만들어 주었다. 그 후부터는 산에 나무를 심고 가꾸는 것을 넘어 산림 자원화까지 실현하면서 오늘에 이르렀다.

그러나 우리가 아까시나무에 대해 좋은 기억만 가지고 있을까? 토종나무를 죽이고 산소를 망치는 나무라고 싫어한다. 또 우리 산을 망치려고 일제가 일부러 심었기 때문에 다 베어내고 다른 나무를 심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오해이다.
 
지금 아까시나무 꽃이 한창이다. 몰라도 신록 사이로 흰꽃을 길게 늘어뜨리고 있는 나무라면 십중팔구 아까시나무다. 꽃은 출렁이고 향기는 달콤하다. 꿀의 70%를 아까시나무 꽃이 담당하니 벌들이 이때를 놓칠 리가 없다. 이렇듯 우리에게 추억을 선물하고, 헐벗은 산을 푸르게 만들어 준 아까시나무. 이제는 그의 이름을 제대로 불러주자.

요즘 한반도에 평화와 통일의 기운이 높다. 좀 더 지켜봐야겠지만 참으로 기쁘고 감사할 일이다. 그 와중에 남북 첫 교류사업으로 ‘산림사업’이 선정되었다고 한다. 분단의 긴 세월 동안 북한은 세계에서 세 번째로 산림 황폐화가 심각한 국가가 되었다. 그래서 더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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