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창섭 삼천포여고 교장 / 시인

여정의 끝은 멀고 또 멀었습니다. 얼마나 많은 시간을 길 위에 뿌렸는지조차 기억나지 않습니다. 숱한 달림이들이 보란 듯이 왼쪽으로 오른쪽으로 무수히 앞질러 갔습니다. 대단하다는 생각과 함께 부러움이 그들의 등줄기를 바라보는 시선에 가득 묻어 있었습니다. 걸어도 걷는 것이 아니었고 뛰어도 뛰는 것이 아니었으니 그 심정을 헤아릴 수 있을까요.

그리고는 마침내 어기적어기적 40km 지점을 지났습니다. 남은 거리는 2.195km에 불과했지만 여전히 멀어만 보였습니다. 꾸역꾸역 걸으며 내심 두 가지를 다짐했습니다. 하나는 무슨 일이든 기본기를 잘 다지고 연습을 철저히 하자는 것이었습니다. 운동을 시작할 때 몸 풀기를 하고 끝난 뒤에는 반드시 마무리 운동을 하는 일은 매우 중요합니다. 몸의 유연성을 길러 주고 부상을 예방해 주는 효과가 있습니다. 연습은 달리기를 편안하게 즐겁게 조금은 더 빠르게 해 주는 유일한 길입니다. 속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힘든 과정과 휴식을 반복하여 운동 강도와 시간을 늘리는 징검다리 훈련(Interval Training)을 해야 하고, 지구력을 기르기 위해서는 오래 천천히 달리기(LSD, Long Slow Distance)를 통해 꾸준히 거리를 늘리는 방법이 가장 바람직하겠지요.

또 하나는 앞으로 참가하는 모든 풀코스는 어떤 경우라도 걷지 않겠다는 다짐이었습니다. 자신과의 약속은 타인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한 첫 번째 신뢰 행위입니다. 남의 눈과 마음은 속일 수 있어도 정녕 자신을 속일 수는 없는 것이지요. 마라톤은 다른 그 무엇보다 정직한 운동이고 또 정직한 운동이어야만 합니다. 양심을 전제로 한 운동이고 또 양심적인 운동이어야 합니다. 뙤약볕 아래를 달리며 흘리는 땀방울은 신선한 노력과 노동의 결과물입니다. 그 땀은 발암 물질, 중금속 성분, 노화 성분, 노폐물 등 유해 물질을 흡수하여 걸러내는 작용을 합니다. 운동을 하지 않고 한증막에 들어 앉아 흘리는 육수肉水와는 근본적으로 성분이 다르고 성격이 다릅니다. 어쨌든 2018년 4월 현재까지 풀코스를 달리는 동안 단 한번도 걸은 적이 없었습니다.

저에게 달리기는 하늘이 내려준 최고의 보약이었습니다. 그만큼 달리기가 저에게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높습니다. 그렇다고 달리기를 아무에게나 권유하지는 않습니다. 신체 여건이 각자 다르기 때문에 몸 상태에 따라 달리기가 해로울 수도 있습니다. 그 가능성을 배제하기는 어렵지요. 무릎이나 발목, 발바닥 혹은 여타 관절 부위가 건강하지 않으면 무리하게 뛸 이유는 없습니다. 한 시간 정도 가볍게 걷기만 해도 운동 효과는 충분히 얻을 수 있습니다. 그마저도 충격이 가해져 견디기가 어려우면 수영장 혹은 목욕탕에 가서 물 속 걷기를 하는 것도 좋은 습관입니다.

문제는 사람들이 전문적인 식견이 부족하거나 몰라서가 아니라, 운동을 우선 순위 목록에서 빼 버리거나 한참 뒤로 미뤄 실천하지 않는다는 고착화된 버릇 때문이지요. 곧 머리로 생각만 하는 공허한 운동만 있을 뿐 몸을 움직여 실천하는 운동을 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아무리 좋은 운동도, 아무리 좋은 이론도, 아무리 좋은 처방도 내가 몸과 마음으로 받아들여 실행하지 않으면, 그건 분명 휴지 조각보다 못하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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