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부산 도시재생 견문록 ②깡깡이예술마을

칼 두 자루로 자식을 대학 보낸 삼천포 억척 모정과 닮아
낡고 쇠퇴한 마을이 아날로그 감성의 여행지로 변신 꾀해

▲ ‘깡깡이아지매’한귀선 할머니가 깡깡이마을의 역사를 보여주듯 한 아파트의 벽면에 벽화로 표현돼 있다. 제목은 ‘우리 모두의 어머니’.

대한민국 최초로 목선에 동력을 장착했던 조선소 ‘다나까조선소’의 창업지가 있던 영도구 대평동은 30~40년대 근대조선 일번지라는 수식어가 말해주듯 부산의 희망이었던 곳이다. 피난 수도 부산의 남포동과 대평동 사이로 수많은 배가 들고 나며 수많은 억척 아낙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해 왔다.

50~60년대엔 영도 섬 곳곳이 매립돼 조선소로 바뀌고, 바다에는 고쳐야 할 원양어선 등 선박이 즐비했던 성수기가 있었다. 바닷물에 녹슨 선박의 녹을 제거하느라 ‘깡깡’ 대는 망치소리가 끊이지 않던 바로 이곳, 배들의 종합병원 여기가 깡깡이마을이다.

이곳 주민의 수는 90년대 5000여 명 수준에서 보면 20%로 떨어졌다. 상당수 수리조선소가 다대포 등으로 옮겨간 결과다. 조선 산업의 쇠락으로 폐가가 늘고 주민의 고령화도 가속화했다. 생활환경은 갈수록 열악해졌다. 인프라는 미비한데다가 삶의 질은 떨어져 도심 공동화가 갈수록 심각해졌고, 치안마저 불안한 지경에 이르렀다.

이에 2015년 부산시와 영도구의 예산 35억 원을 투입해 감천문화마을에 이은 ‘예술상상마을’이란 이름으로 도시재생사업을 시작했다. 이곳 깡깡이마을의 역사, 산업 그리고 생활에 문화 예술의 옷을 입혀 문화예술 창작공간으로서의 재생이 진행 중인 곳이다.
 

▲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두 가닥 줄에 의지한 채 가정을 지키기 위해 두드린 망치소리가 ‘깡깡이 마을’이라는 이름을 낳았다.

깡깡이마을의 자산은 뭘까? 그 첫째가 사람이다. 깡깡이질로 세월을 쌓은 나이든 어머니. 대평동 아파트 벽 한 면을 채운 주름진 얼굴로 가늘게 실눈을 뜨고 어딘가를 응시하는 ‘50년 깡깡이아지매’ 한귀선 할머니의 표정을 담아낸 대형 벽화가 인상 깊다.

독일작가 핸드릭 바이키르힉이 그린 ‘우리 모두의 어머니’라는 작품이다. 낙상사고에 고질적 난청, 류머티즘의 만성적 직업병의 고통과 고된 일상 속에 희망을 응시하는 눈을 가진 한귀선 할머니의 삶 그 자체가 깡깡이아지매의 삶이고 살아있는 근대유산이다.

두 번째는 어디서나 만나는 기능 다한 녹슨 부품들이다. 어느 배의 중요한 역할에서 해제돼 지금은 고물상의 고철로 혹은 새로운 주인을 기다리는 갖가지 크고 작은 기자재와 부품들이 눈에 들어온다. 아직도 대평동 산업의 명맥은 끊이지 않았다. 여전히 중형선박의 수리와 도색이 이루어지고 있고 깡깡이 소리를 대체한 그라인더의 쇠 가는 소리가 골목마다 전해 온다. 대평동의 업은 수리산업과 고철산업이다. 그 수리산업과 고철이 담겨있는 터전이 근대 조선 산업의 문화유산이다.

세 번째로는 늙었거나 어쨌거나 깡깡이마을에 사는 사람들의 공동체가 자산이다. 한창때 200명도 넘던 원아가 다녔던 유치원은 지금은 마을주민 커뮤니티와 깡깡이 지역문화의 아카이브로 변신했고 2층은 박물관, 아래층은 커피숍을 겸한 마을기업의 터전으로 자리 잡고 있다.

낡고 쇠퇴한 마을은 아날로그 감성의 여행지로 변신 중이다. 스트리트 아트의 생산지로 변모시켜 젊은 아티스트를 끌어들이는 시도를 통해 문화 창작 공간으로서의 대평동으로 변화를 꿈꾸고 있다. 아울러 주민참여를 통해 마을 공동체를 강화하고 불편한 공간을 주민 스스로 문화적 활동으로 개선해 나가는 데에 심혈을 기울이겠다는 것이 마을사업단의 목표다.

하지만 방문의 첫 느낌은 솔직히 실망이었다. 철공소 집단지의 허름한 골목, 녹 먼지가 흩날리고 거기다가 선박 도색 페인트 냄새로 숨 쉬는 것조차 조심해야하나 걱정을 했다. 바다건너 국제시장 쪽의 화려한 외관의 현대식 건물과 대조된 대평동의 건물들은 흡사 유태인의 게토와 다름없었다. 심지어 새로운 영도다리가 시간에 맞춰 도개하는 장면을 볼 즈음엔 속으로 ‘단절’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기조차 했다.

▲ 오토메타 조형물 ‘해와 달’. 조수 간만의 차에 따라는 움직이는 예술작품이 자갈치 시장을 응시하고 있다.

대평동의 바닷길을 따라 걷다보면 키네틱아트의 조형물을 만나게 된다. 그러고 보니 곳곳에 금속 기자재를 활용한 조형물 보기가 어렵지 않다. 이곳이 철을 재료로 하는 예술적 활동이 용이하겠다는 나름의 장점과 조형공작물의 제작에 있어 발생하는 소음도가 일상의 생활환경과 크게 다를 바 없어 활동의 제약이 없겠다는 안도감이 들기도 했다.

공업지구의 낡은 건물에 그림을 그려 도시미관이 한결 화려해진 곳을 보게 된다. 그라피티와 스트리트 아트라 불리는 공공미술 관련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국내 뿐 아니라 해외의 유명 아티스트를 초청해 예술로서의 도시재생을 꾸려가고 있는 현장이다. 올해는 영국 셰필드와 인터시티 아트프로젝트로 한‧영 상호 문화교류전을 갖는다고 한다. 스테인리스와 철강 산업의 본거지로 불리는 셰필드는 일찍이 쇠퇴진행으로 대평동과 같은 환경이었는데 다양한 작가와 장인들에 의해 예술문화로 도시재생을 성공시켜 가고 있다.

폐가가 풍기는 을씨년스런 분위기가 오히려 예술적 기재가 되고 삭막함으로 죽어 있는 좁은 골목길에 한 그루의 나무와 화분 한 개가 모두 예술이라는 감성으로 표현되고 있었다. 동네 모든 공간이 역사박물관에 예술전시공간이 되고 작업장으로 변신하게 되었다니 오히려 삭막해 보였던 깡깡이 예술마을이 무한한 잠재력을 가진 문화적 창작공간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 김학록 시민기자 삼천포구항 도시재생주민협의체 위원장

무엇보다 참신한 점은 마을커뮤니티 공간의 벽에 걸린 시와 그림이었다. 마을 어르신들이 직접 참여해 그리고 직접 지은 시들로 벽이 모자랐다. 이 같은 일상의 변화가 바로 재생의 바른 길이라는 점이다. 삶에 짓눌려 신음하는 일상이 아니라 스스로의 노력으로 마을 전체를 창작의 공간으로 꾸며가며 새로운 공동체로서의 태평을 꿈꾸고 있었다.

삼천포구항의 107년의 역사, 칼 두 자루로 자식을 대학에 보낸 억척의 모정은 깡깡이아지매와 다를 바 없는 모습이다. 쥐치어의 본산이며 어포 가공 산업의 효시로서의 삼천포는 근대유산 역시 깡깡이마을과 닮은꼴이다. 쇠퇴해 가는 어시장 뒷골목이 창업의 공간이 되고 창작의 공간으로 변모하는 삼천포구항의 좋은 롤 모델이 깡깡이예술마을은 아닐까 하는 희망찬 상상을 하게 된다.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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