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부산 도시재생 견문록 ①초량 이바구길

어르신들의 삶이 녹아 있는 곳 ‘이바구길’
삼천포 청널굼티·해태거리·서리 지역 닮아
좁은 골목길도 무궁한 인문자산 될 수 있어
원주민이 관광 상품처럼 인식되는 건 막아야

▲ 옛날엔 건물 6층 높이의 급경사지 168계단 아래 쪽 우물에서 하루에 열 두 번도 더 계단으로 물지게와 물동이로 져 날랐다. 나이든 초량동 어르신에게 이 계단은 더 이상 길이 아니다. 이젠 모노레일이 놓여 어르신의 발 역할을 한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도시재생’은 생소한 용어였다. 우리 사천이 지난해 말 국토부 공모사업에 삼천포구항 ‘바다마실, 삼천포愛빠지다’가 선정되면서 도시재생은 우리 삶의 보통명사로 다가왔다. 거리 곳곳에 축하현수막이 나붙었고 케이블카 개통과 함께 불 꺼진 삼천포항을 건져낼 구원투수로 분홍빛 꿈에 부풀게 만들었다.

최근 제2기 도시재생대학, URBAN-LINKER 과정이 개설되었다. 2016년도 재생대학이 공모 준비를 위한 과정이었다면 이번 과정은 재생사업에 있어 주민 주도의 주춧돌 다지기를 위한  심화과정인 셈이다.

제2기 도시재생대학 URBAN-LINKER의 백미는 선진 도시재생사업지의 견학 프로그램이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하지 않는가. 지난 4월17일 부산의 도시재생으로 성공한 3곳을 하루 코스로 둘러보았다. 단지 몇 시간 둘러보고 모든 것을 알 수는 없겠지만 도시재생을 먼저 시작한 비슷한 환경의 선진지인 만큼 동기부여라도 받게 된다면 하는 것이 이번 여행을 임하는 학생으로서의 마음가짐이었다. 초량 이바구길과 영도 깡깡이예술마을 그리고 감천문화마을을 차례로 둘러보고 왔다. 오늘은 그 첫 소개로 초량 이바구길이다.

부산 초량 이바구길 투어는 부산역 건너편 차이나타운과 텍사스거리에서 시작된다. 일제강점기 그리고 광복, 한국전쟁으로 밀려든 피난 경제로 성장했던 중심상권은 넘쳐나는 인파로 발 디딜 틈조차 없었다던 옛날과 달리 지금의 거리는 한산하다 못해 을씨년스러웠다. 재미있는 것은 차이나타운은 화교집단거주지라 이해할만했는데, 텍사스거리는 왜 텍사스인지 쉽게 다가오지 않았다. 이바구 해설사의 설명을 듣고서야 무릎을 쳤다.

광복이후 미군이 주둔케 되고 자연스럽게 유흥가가 자리 잡게 된다. 이때 질서 유지를 위해  미군 헌병이 권총을 차고 모자를 쓴 복장으로 순찰을 돌았는데, 그 모습이 서부영화 속의 총잡이 같아 ‘텍사스’라고 이름이 붙었단다. 지금은 텍사스거리의 미군은 사라진지 오래고 추운 러시아에서 따뜻한 남쪽으로 찾아온 러시아 사람이 쉽게 눈에 들어왔다.

이바구길이라 이름 붙임에도 남다른 사연이 있다. 초량에서 나고 자란 77분의 어르신으로 구성된 투어해설사의 스토리텔링을 통해 진짜 부산이야기를 풀어내는 까닭이란다. 초양지역의 근대사적 스토리텔링을 이곳에서 나고 자란 어르신들이 들려준다는 얘기다.

▲ 재생사업에 담장과 길은 빼놓을 수 없는 재료다. 삼천포도시재생 답사객들이 이바구길을 돌아보고 있다.

전쟁 참화 속에 터전을 잡은 닥지닥지 언덕위의 집, 사람은 밀려들고 살기위해 그 ‘먼당’에 터전을 잡아야 했다. 그리고 그 백 년 전 매립을 통해 확보한 땅에 공장을 짓고 사람을 불러들인 곳이 이곳 초량이다. 바다의 느낌은 이름으로만 남아 오늘에 전해 온다. 삶의 형편이 나아지고 자가용이 대중화 되면서 거주형태는 대단위 아파트를 선호하게 되고 경제 활동력이 강한 젊은 사람들은 차차 이곳을 떠나 동쪽으로 옮아가게 된다. 원도심은 점점 나이든 세대만 남게 되고 도심의 공동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쇠퇴는 가속화 되어 갔더라는 이야기.

도시는 달라도 변화의 형편은 비슷했다. 초량은 우리 삼천포의 청널굼티, 해태거리, 서리 지역을 닮아 있다. 통영의 동피랑, 부산의 초량, 이 모두가 갖는 공통점은 좁은 골목이다. 이 골목에서 만나는 60~70년대 삶의 풍속은 너무 흡사하다. 그 잃어버린 과거가 추억이 되고 그 향수 속에  켜켜이 쌓여 있는 스토리는 골목길과 함께 무궁한 인문자산이 될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번뜩 들었다.

근대 문화유산 백제병원, 한강 이남의 개신교 첫 교회라는 수식어가 붙는 초량교회, 6층 높이의 가파른 계단을 따라 물을 지어 날랐던 168계단, 지금은 모노레일이 어른들의 약한 체력을 보조해 발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달 보기가 좋아서 달동네인가 아니면 경치가 좋아 전망대라고 해야 할까. 어쨌든 그 계단 길 곳곳은 이야기가 있는 마을기업과 예술가의 갤러리, 게스트하우스가 자리를 잡고 옛 정취와 인물을 발굴해 부산을 찾는 관광객을 기다리고 있다.

▲ 김학록 시민기자삼천포구항 도시재생주민협의체 위원장

도시재생은 테마파크가 아니다. 도시재생은 사람 중심의 생태 복원사업이다. 사람이 사는 한, 사는 사람에게 살기 좋은 공간이 되어야 함이 사업의 목적이다. 원주민이 관광 상품처럼 인식되거나 거주지의 프라이버시 침해가 심해 빨래조차 널기 어려운 환경은 바람직한 재생이 아니다. 살기 좋은 재생이 관광지화된 거주지라는 뜻으로 오해돼선 안 된다.

지역문화자산의 발굴과 보존이 재생이다. 대중적 문화로의 전시와 노출을 통해 인문적 공유가 살아나야 하는 곳이 재생구역이다. 지금 딛고선 이 공간이 언젠가는 잊혀, 대를 이어오는 시간의 궤적에서 한 단락이 사라지게 된다면 향토를 통해 공감하는 가치가 사라지는 것이다. 이바구길은 이 같은 갈등적 구조를 조화 있게 조정하려는 주민의 노력이 숨어있는 도시재생 구역이었다.

저작권자 © 뉴스사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