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글에 이어지는 삼국지. 주준, 황보숭, 노식 등에 의해 황건군이 토벌되고 여러 이민족의 난도 평정되어 갈 무렵, 대장군 하진은 극악무도한 동탁을 낙양으로 불러들인다. 하진의 어리석은 결정에는 그 부하 원소의 잘못도 적지 않다. 당시 군권을 장악하고 있던 최고실력자 하진으로서는 ‘은밀한 지시’ 한번이면 십상시를 손쉽게 제거할 수 있는 일이라며 탄식했던 조조와 대비되는 원소였다. 어리석은 하진은 십상시로부터 목숨을 잃고 기울어진 한나라를 더욱 위기로 내몰았다. 필자가 삼국지에서 느낀 첫 역사적 아쉬움이었다.

삼국지 배신의 아이콘 여포를 내세워 잔혹한 동탁을 황제의 이름으로 죄를 물어 주살케 한 일등공신 초선은 중국 4대 미녀 중 유일한 가공의 인물이다. 초선의 얼굴을 본 달이 부끄러워 구름 사이로 숨어 버렸다는 왕윤의 말로 인해 폐월(閉月)이라고 불리게 되었다니, 중국 사람들의 과장법은 수천 년의 유래가 있는 것이리라. 수양딸 초선을 이용하여 동탁을 제거하는데 성공했지만 완고하고 인정을 베풀지 못한 왕윤은 동탁수하의 장수 이각과 곽사에 의해 죽음을 맞게 된다. 두 번째 아쉬움이다.

한편, 동탁 암살시도가 미수에 그쳐 도망자 신세가 된 조조는 진궁의 도움으로 목숨을 구하게 되지만, 친구 여백사의 가족들이 자신을 죽이려 한 것으로 오해하여 이들을 도륙하고 벗을 위해 술을 지고 오던 여백사마저 죽이고서는 ‘내가 천하 사람을 다 버리는 한이 있어도, 천하 사람들이 나를 버리게는 하지 않겠다’는 말로 스스로를 합리화시키고 진궁과 결별한다.

서기 190년대 중국 인구는 약 2000만 명으로 추산된다고 한다. 100년에 가까운 내전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고, 또 비참함 속에 있었는지를 보면서 지금의 법치주의와 민주주의의 소중함을 새삼 느끼게 된다. 법치주의는 진시황이 상앙, 이사 등 법가사상가들을 통해 강력한 형벌로써 국민을 통제한 일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오히려 이와 반대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법치주의는 국민주권의 이념에 따라 국민의 정치적 합의를 바탕으로 창설된 국가권력이 악용 또는 남용되지 못하도록 국민 또는 국민의 대의기관이 만든 법에 따른 통치를 말한다. 모든 국가권력은 오직 국민의 기본권 보장을 위해서만 존재할 수 있다. 위정자들이 걸핏하면 법치주의 운운하면서 국민을 위협하지만, 법치의 수범자는 국민이 아니라 국민으로부터 권력을 위임받은 자들이다.

한편, 민주주의는 국민이 국가의 통치활동에 참여할 수 있는 정치적인 자유와 평등을 그 내용으로 한다. 한 나라의 민주주의 발전 척도는 표현의 자유 보장 정도에 달렸다. 국가안보 등을 위해서 제한된다고 하더라도, 표현의 자유는 그 제한에 더욱 신중해야 하는 이유다. 법치주의와 민주주의 더 나아가 그 각 제도의 실질적인 보장을 위한 사회국가의 이념은 자유와 평등, 정의를 실현하는 삼두마차로서 우리 헌법의 기본원리를 이루고 있다.

스스로를 황제로 칭하다가 공적이 되어 비참한 죽음을 맞이한 원술, 별도의 황제를 옹립하려던 원소와 달리 핍박받던 헌제를 끼고 제후를 호령한 조조는 삼국지 3대 대전 중 그 첫 번째, 관도대전에서 원소의 대군과 만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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