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선한의 영화이야기

영화 포스터

한치 앞을 가늠할 수 없는 암흑 속에서 예고 없이 들리는 소리는 짙은 어둠보다 더 공포스럽다. 청각적 공포가 시각적 공포보다 더 치명적인 이유는 대처할 수 없기 때문이 아닐까. 한 걸음 한 걸음 무서운 상황이 다가오기 시작하면 저도 모르게 손으로 눈을 가리거나 고개를 돌리게 된다. 그런 관객들의 허를 찌르듯 대부분의 공포영화는 소리라는 장치를 관습처럼 사용한다. ‘보이는 것’은 대비할 수 있지만 ‘소리’는 부지불식간에 다가와 공포 혹은 공포라는 쾌감을 선사한다. 그런 영화적 관습을 뒤집은 영화가 <콰이어트 플레이스>다.

시작은 조용했으나 참신하다는 입소문을 타고 예매율도 높아지고 있다고 하니 소리 없이 강한 공포영화라는 ‘존 크래신스키’ 감독의 전략은 주효한 듯하다. 사실 생각은 누구나 하지만 그 아이디어를 스크린 속으로 끌어들여 구체화하기란 쉽지 않다. 특히 공포영화라는 장르는 늘 반복됨에도 익숙한 클리셰와 맥거핀의 향연 속에 푹 빠지는 맛에 보는 법이라, 진성 골수팬들이 부지기수다. 따라서 이 익숙함을 비틀어버리기란 웬만한 배짱으로는 힘든 법이다. <콰이어트 플레이스>가 놀라운 이유 중 하나가 그 빤한 공식을 보기 좋게 뒤집으면서 공포 영화라는 장르 자체의 덕목을 버리지 않았다는 점이다.

<콰이어트 플레이스>라는 제목처럼 영화는 러닝타임의 대부분을 침묵에 할애한다. 스크린 속의 침묵은 영화를 보는 관객마저 숨죽이게 만들어 옆 사람의 작은 움직임까지 소스라칠 정도다. 스토리는 무척 단순하다. 볼 수 없지만 청각이 극도로 발달한 괴생명체로부터 살아남기 위해서는 소리를 내지 않아야 한다. 생존전략은 무척 단순하다. 무조건 침묵하기! 하지만 예상대로 소리를 내지 않고 일상을 영위하기란 무척 어렵다. 영화는 이렇게 불가능에 가까운 ‘소리 없는 일상’을 공포와 긴장감을 부여하는 요소로 사용한다.

참신한 소재, 주제를 끝까지 밀고 가는 감독의 연출력, 진짜 가족 같은 배우들의 호연(부부로 나온 존 크래신스키와 에밀리 블런트는 실제로도 부부다)이 어우러져 썩 괜찮은 공포 영화 한 편이 탄생했다고 말하고 싶다. 게다가 대자본이 흥행을 좌우하는 블록버스트 위주의 영화 시장에서 가성비로 따지면 꽤나 훌륭하다.

극장가에서 말하는 비수기는 3-4월로, 이맘때는 대체로 규모가 큰 영화보다는 로맨스나 저예산 아이디어로 제작된 기획영화가 걸린다. <콰이어트 플레이스> 덕분에 앞으로는 공포영화가 자리 잡을 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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