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 잎이 돋는 은행나무.

며칠 전 책읽기를 즐기는 지인들과 나들이 삼아 오인숲에 갔다. 가는 길에 처진벚나무를 보았고, 이제 막 새순이 돋고 있는 은행나무를 만났다. 꽃잎이 떨어져 듬성듬성해도 처진벚나무에는 한마디씩 감탄사를 날린다. 그러나 맞은편 길 따라 제법 길게 가로수로 서 있는 은행나무는 그냥 ‘나무인가 보다’하고 지나친다. 당연하다. 불과 몇 년 전까지 나의 모습이다. “무슨 나무인 것 같아?” 물으니 역시 모른다. 은행나무라고 하면 허탈해한다. 은행나무를 모르는 사람은 없으니까. 가을에 노란 잎을 풍성하게 달고 있거나 구린내 풍기는 열매를 밟아야 은행나무인줄 안다.
 
봄에 만나는 은행나무는 어떤지 궁금하지 않은가? 자세히 보면 오리발처럼 생긴 어린잎이 앙증맞게 돋고 있다. 나무껍질은 눈을 감고 손으로 만져보면 거북이 등처럼 거칠다. 왠지 그 거친 껍질에 은행나무의 나이만큼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는 것 같아 은근 좋다.

은행나무는 오래 사는 나무의 대표선수다. 천연기념물, 시도기념물, 보호수로 지정받아 사랑받고 있는 나무가 거의 800그루에 이른다. 이들 중 으뜸은 경기도 양평에 있는 용문사의 1,100살의 나이를 자랑하는 천연기념물 제30호 은행나무이다. 우리가 잘 아는 마의태자가 나라를 잃은 설움을 안고 금강산으로 가다가 심었다는 전설과 의상대사가 짚고 다니던 지팡이를 꽃아 놓은 것이 자라서 나무가 되었다는 전설이 있다. 비단 이것만 있겠는가. 천년의 세월만큼 입에서 입으로 전해오는 이야기가 더 있을 것이다.

은행나무는 ‘살아있는 화석식물’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공룡이 살던 때부터 살았고, 공룡을 멸종시킬 만큼의 지구 대변화에도 지금껏 꿋꿋하게 살아남았다. 이유가 무엇일까? 개인적으로 애독하고 있는 나무책의 저자인 박상진 교수는 은행나무의 강력한 환경 적응력 때문이라고 말한다. 너무 춥거나 덥지 않으면 어느 곳에서라도 살아갈 수 있고, 아무리 오래된 나무라도 줄기 밑에서 새싹이 돋아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 잎에는 플로보노이드, 터페노이드 등 항균성 성분들이 포함되어 있어서 병이 거의 없고 공해에 강하다. 그래서 가로수로 많이 심는다.
 

▲ 박남희 (숲해설가 / 교육희망사천학부모회 사무국장)

사천에도 은행나무가 가로수인 곳이 있다. 특히 옛 삼천포 동지역 길가에 은행나무가 심겨져 있다. 또 초전 공원에 가면 은행나무를 여럿 만날 수 있다. 학교에도 많다. 정동초등학교 강당 옆에 있는 은행나무가 멋스럽다. 가을이면 아이들이 수북이 내려않은 노란 잎 더미에서 한바탕 뒹군다. 다행히 구린내 나는 열매가 안 떨어진 걸 보니 수그루가 분명하다. 그 외에도 아파트며 동네 곳곳에 있을 것이다.

사천시를 상징하는 나무, 즉 시목(市木)이 은행나무다. ‘나무의 모형과 단풍이 곱고 활기차며, 서로 함께 자라야 결실이 이루어지는 것은 시민화합을 상징함’이라는 설명 글이 시청홈페이지에 있다. 은행나무의 특성을 담고 있을 뿐, 시목에 대한 설명치고는 부족해 보인다. 시목인 은행나무의 장점을 사천시가 추구하는 시정의 방향과 시민이 행복한 사천을 만들기 위한 큰 그림 속에 잘 녹여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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