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선한의 영화이야기

▲ 영화포스터

한국사회에서 불륜을 소재로 한 작품을 만들기에는 대단한 용기가 없이는 불가능한 법이다. 더구나 (방향은 다를 지라도) 요즘 같이 #미투 열풍이 뜨거운 시기에 남자의 바람기를 전면에 내세운 <바람 바람 바람>이 개봉했으니, 어쩌면 간이 배밖에 나왔다는 표현으로 부족할 지도 모른다. 흥행을 위해서 재미라는 기본옵션을 갖추는 건 물론이고 비판과 지탄의 대상이 될 수도 있는 만큼 절묘한 회피기술을 장착해야 하는데 <바람 바람 바람>이 그 정도의 역량이 될까?

<스물>의 이병헌 감독이 이번에는 기혼 중년을 앞세웠다. 파릇파릇한 청춘들의 유쾌한 웃음으로 누적관객 300만을 넘기더니 자신감이 확실히 붙었나보다. ‘청소년관람불가’라는 타이틀을 달고 19금 어른 코미디로 돌아왔다. 물론 청불영화로 무려 900만을 돌파한 <내부자들>이 있고 그 전에는 800만을 넘긴 <친구>도 있었으니 허튼 도전은 아니다. 그러나 (유럽영화에 비해) 도덕적 강박이 거의 트라우마 수준인 대한민국에서는 아무래도 소재의 위험성은 너무나 크다.

이런 난관을 극복하는 절묘한 회피기술이 웃음이다. 전작 <스물>과 마찬가지로 상황과 감칠맛 나는 대사로 실컷 웃게 만든다. 이성민과 신하균이라는 걸출한 배우들은 아주 평범한 말 한 마디도 주옥같은 대사로 바꿔버린다. 시작부터 터지는 웃음이 소재의 불편함을 꽤나 희석시킨다. 그 동안 성인 코미디로 제대로 성공한 우리 영화가 거의 없는 편인데 잘 하면 이름을 남길 수도 있겠다.

그러나 웃음이 끝나는 초중반부터 호불호가 심히 갈릴 수밖에 없으니, 이는 정서적 공감대의 문제다. 현실적으로 누가 ‘바람’이나 ‘불륜’을 미화할 수 있을까. 하여 일탈과 불륜은 다르다고 강변해야만 하고 ‘참사랑’에 대한 의미도 담아야 한다. 네 명의 캐릭터가 보여주는 각각 다른 방식의 사랑을 모습으로 나름 매끄럽게 주제를 드러내지만, 영화를 통해 현실을 반추한다면 튀어나온 못처럼 불편하지 않겠는가. 영화를 영화로만 보면 된다고 하지만 그게 잘 되면 도인이지.

원작이 체코의 <희망에 빠진 남자들>이라고 하던데, 어쩐지 싶었다. 아무튼 유럽 영화에서 애인 따로 배우자 따로 두는 것을 당연하게 묘사하는 것을 두고 이것이 문화의 차이일까, 정서의 차이일까 하고 고민한 적 있는데 그 동네나 이 동네나 결국 사람 사는 곳은 다 똑같은 법이더라. 어느 사회가 규범을 무시한 자유연애를 용인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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