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창섭 삼천포여고 교장 / 시인

바람은 때로는 나직이 불고 때로는 거세게 휘몰아칩니다. 바다의 밀썰물은 끊임없이 오가며 순수 노동을 지향합니다. 그렇게 아무 일 없다는 듯 평온한 하루를 맞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삶을 한 꺼풀만 벗겨 안을 들여다보면 결코 편안하거나 녹녹하지만은 않습니다. 당장 눈앞에 보이는 일은 아닐지라도 자연을 무자비하게 파괴하고, 생명의 가치를 하찮게 여겨 전쟁을 일삼고, 양심을 악용하여 탐욕의 배를 채우며 욕망의 늪에서 허우적대는 인간들은 점점 늘고 있습니다. 초록별 지구는 그런 인간으로 하여 하루도 조용한 날이 없다는 얘기입니다. 결국 인간은 돌이킬 수 없는 파멸의 수렁으로 자신을 내모는 게 아닌가 하는 불안감을 갖게 합니다. 세상에는 복잡하고 오묘하게 얽힌 사연들이 많아 시끌벅적한 게 이상하거나 새삼스러운 것은 아닐 테지만 불투명한 미래 사회는 분명 걱정스럽습니다.

얘기의 폭을 좁혀 요즘 문단에서 일어나는 일련의 사건에 대해 한 마디 얹습니다. 비록 어제오늘 일어난 일은 아니지만, 그동안 공공연히 음성적으로 자행해 온 일부 개인 혹은 집단 글쓴이들의 과오에 대해, 참되게 자성을 하고 환골탈태하여 거듭 깨어나기를 진정 바라는 마음으로 고뇌를 풀어 봅니다. 일부 개인 혹은 집단 글쓴이들의 과오라고 영역을 한정했지만, 이 기회에 너나할 것 없이 이 땅의 모든 사람들은 자신이 걸어온 발자취를 진지하게 되새겨 보고 깨우치는 데까지 나아갔으면 하는 바람 또한 담고 있습니다. 각자가 지닌 업보의 몫을 외면하지 말라는 간절함의 표출이기도 합니다. 

황해문학에 발표한 최영미 시인의 ‘괴물’이란 시가 문인들 그리고 페미니스트, 문학을 읽고 사랑하는 이들에게 매우 주요한 관심사가 되고 있습니다. 이번 일을 계기로 문단의 해묵고 썩은 환부를 도려내는 변화의 단초가 되기를 저는 개인적으로 철저히 바라고 있습니다. 시 ‘괴물’ 내용을 압축해 봅니다. 「En선생, 그는 손버릇이 더럽고 교활하며 똥물처럼 시를 쏟아내어 노털상의 후보로도 여러 번 올랐는데, 그가 상을 받으면 이 나라를 떠나야겠고 따라서 이 괴물을 잡을 방법을 생각하는 나의 번민은 깊다.」는 심정을 토로한 작품이지요. 한 마디로 나도 성추행 피해자다, 라고 외치는 미투(me too)운동의 힘들고 용기 있는 고백이었습니다.    

글을 쓰는 사람이면 누구나 번득이는 직관력과 창의력을 생명처럼 소중히 여길 것입니다. 하지만 글을 잘 써서 책이 많이 팔린다 하여, 그리고 다양하고 두터운 독자층을 확보했다 하여, 수십 수백 권의 저서를 펴냈다 하여 작가 정신이 무작정 올곧고 훌륭하고 국민들의 삶의 척도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작가가 작품에 담고 있는 긍정적이고 계도적인 주제나 그 밖의 무궁한 내용 전부를 삶에 반영하기란 쉽지 않을뿐더러 실제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렇더라도 작가로서 인간적 사회적 부도덕성을 은밀히 수용하거나 타인에게 강요하고, 이를 자신의 관념이나 사상을 표현한 글 세계와는 다른 분야로 이해해 주기를 희망하는 것은 극단적 어불성설이라 판단합니다. 빼어난 글로 사회와 독자에 끼친 긍정 요소가 거대한 만큼 그런 정도의 실수는 인간적으로 덮어 주자는 식의 문단 온정주의는 마땅히 거부하고 퇴출해야 합니다. 문단에 새로운 풍토를 조성하기 위한 푸닥거리를 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다음엔 우리 문단이 안고 있는 현실적 폐단을 살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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