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선한의 영화이야기

영화 포스터.

모든 것을 돈으로 환산하는 대도시의 삶에는 여유가 없다. 웃기 위한 돈, 놀기 위한 돈, 쉬기 위한 돈이 없어서 쫓기는 삶을 살 수밖에 없다. 언젠가는 나도 여유로운 삶을 살겠다는 희망에 24시간이 부족하다는 듯 뛰어다니지만, 어느 순간 주객은 전도돼 목적을 잃어버리고 관성으로만 산다. 정말 돈이 있으면 삶의 여유를 되찾을 수 있을까. 다른 방법은 없을까.

서울을 떠나 시골인 고향으로 돌아온 혜원(김태리)은 쫓기듯 살아온 대도시의 삶을 “배가 고파서”라고 뭉뚱그렸다. 배가 고프다는 별 것 아닌 말 한 마디에 참으로 많은 것이 담겼다. 출구 없는 곳에서 헤매던 청춘이 걸음을 멈춘 곳은 언제나 조용하게 자리를 지키는 시골의 자연이다. 배고픈 청춘은 자급자족으로 킨포크 라이프를 실천하면서 자신을 위한 음식을 만들어 먹는다. 계절이 전해주는 갖가지 작물의 향기가 식탁위에 고스란히 배였다. 식탁 곁에는 도시 생활을 작파하고 일찌감치 귀농한 재하(류준열)와 여전히 힘겨운 삶을 살아가고 있는 은숙(진기주)이 있으니, 상처 입은 청춘에게 이보다 더한 힐링은 없다.

이가라시 다이스케 작가의 명작만화를 원작으로 한 <리틀 포레스트>는 일본에서 두 편의 영화로 제작돼 큰 사랑을 받았고 우리나라에도 개봉됐었다. 각박한 도시생활에 상처를 입고 정적인 시골생활을 통해 치유하는 과정을 보여주면서 많은 이들에게 공감을 얻었다. 극적인 에피소드 하나 없으며, 사계절 뚜렷한 시골의 소소한 일상과 군침 도는 요리가 어우러지는 잔잔함을 눈으로 느끼며 지친 현실을 잊는 일종의 정적 판타지인 셈이다. 따뜻한 위로와 위안에 어느 순간 마음도 훈훈해진다.

하지만 너무 많은 것을 알아버린 나이가 된 걸까. 영화를 영화로만 보지 못하고 현실을 비춰보는 심정이 그다지 편하지만은 않다. 전원생활을 꿈꾸며 귀촌했다가 끝내 포기하고 되돌아가야만 했던 사람들의 실패담도 생각나고, 주말농장 체험자 같은 영화 속 주인공의 삶은 마치 보정에 보정을 마친 컬러풀한 사진처럼 아름답기만 한데 우리가 알고 있는 농촌의 실제 풍경은 결코 화사하지 않기 때문이다. 햇볕에 그을린 자국 하나 없는 해사시한 주인공의 얼굴을 보며 괴리감을 느끼지 않는 게 이상할 뿐이다.

그래도 텃밭 하나는 일구고 싶다.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면서 자연이 주는 과실로 요리를 해먹는다는 낭만이 참으로 보기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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