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창섭의 배우며 가르치며]

송창섭 삼천포여고 교장 / 시인

마라톤 풀 코스(42.195km) 첫 참가를 이렇듯 아무런 예비지식도 없이, 사전에 충분한 대비 훈련도 없이 무모하게 시작했습니다. 도전하는 정신은 변화를 추구하는 누구에게나 필요하고 아름다운 것입니다. 하지만 의욕과 혈기만 앞세워 무턱대고 날뛰는 건 매우 어리석고 위험한 행위입니다. 그렇기에 실패할 확률 또한 높습니다. 자성하는 의미에서 마라톤을 얕잡아 보고 함부로 대했다가 치른 혹독한 대가를 반추하듯 풀어 보겠습니다.

대회 시작을 알리는 출발의 총성이 3월의 드높은 하늘에 울려 퍼졌습니다. 참가자들의 투지 가득한 함성 소리와 함께 힘차게 앞으로 발을 내뻗었습니다. 날은 화창하고 가벼운 바람이 불어 뛰기에는 더없이 좋았습니다. 달리는 길옆으로 천 년 고도인 경주의 역사를 머금은 건물들이 자리하여, 스치면서 잠깐이나마 음미할 수 있다는 것도 매력이었습니다. 한 걸음씩 내달리면서 주자들을 하나하나 추월하는 재미는 그야말로 쏠쏠했습니다. 어떤 음식 맛으로도 흉내를 낼 수 없는 알싸함에 신명났습니다.

10km 지점에 이어 20km 지점도 거침없이 통과했습니다. 그때 그 감정은 지금도 생생하여 마치 엊그제 경험한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킵니다. 기분은 한껏 고조되어 하늘을 찌를 듯 아니, 이미 찔러버린 상태였습니다. 분기憤氣가 아니라 흥기충천興氣衝天이었던 셈이지요. 쾌속 질주는 계속해서 20여 분 더 이어졌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24km를 지나면서 급작스레 체력이 떨어지는 것이었습니다. 도대체 무슨 까닭인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다리가 마비된 듯 제대로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조금 전 혈기왕성했던 힘은 다 어디로 가고 한 순간에 흐느적거리며 만취한 상태의 몸이 되어 버렸지요. 다리를 끌다시피 하여 겨우 25km 지점 급수대에 도착했습니다. 우선 허기를 면해야 했지요. 아침 식사를 빵 한 조각과 우유 한 잔으로 때웠으니 오죽했겠습니까. 배가 얼마나 고팠던지 달디단 초코파이 10여 개를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후다닥 먹어 치웠습니다. 집어 삼켰다는 말이 어쩌면 더 정확한 표현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는 길가 한쪽에 그만 대大자로 누웠지요. 주변에 보이는 모든 사물들이 빙글빙글 돌면서 어지러웠습니다. 눈을 감았는데 몸이 마치 무중력 상태에 떠 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자원봉사자들이 구급차를 불러 줄까요, 하는 소리가 귓전을 때렸습니다. 고개를 가로저으며 손사래를 쳤지요. 삼천포에서 여기까지 어떻게 왔는데, 포기를 한다는 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끔찍한 일이었습니다.

시간은 계속 흘러 누운 지 어느덧 10분을 훌쩍 넘겼습니다. 겨우 몸을 일으켜 조금씩 걸었습니다. 한참을 걷다가 조금 괜찮은 듯싶어 약간 뛰었습니다. 그러기를 여러 번 반복했습니다. 그때 상념의 철퇴가 뇌리를 강하게 두들겼습니다. 오만불손한 거드름이 나은 당연한 결과라고.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대상을 철저히 분석하고 준비해야 실수를 최소화하거나 뒤탈이 없다는 사실을 말이죠. 유비무환有備無患의 삶을 곰곰이 되새기는 것으로 위안을 삼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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