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창섭의 배우며 가르치며] 마라톤 이야기 1. 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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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창섭의 배우며 가르치며] 마라톤 이야기 1. 유래
  • 송창섭 삼천포여고 교장 / 시인
  • 승인 2018.01.18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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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창섭 삼천포여고 교장 / 시인

저는 평소 취미 활동의 하나로 달리기를 즐기고 있습니다. 달리기 영역 중에서도 흔히 올림픽 경기의 꽃이라고 말하는 마라톤을 합니다. 인간이 지닌 인내의 한계에 도전한다는 마라톤, 저의 경험담을 섞어서 이 마라톤의 실체를 해부하는 여행을 떠나려고 합니다.

기원 전 490년에 일어난 일이지요. 페르시아의 다리우스 대제가 그리스의 도시국가인 아테네와 스파르타에 사신을 보내어 항복할 것을 요구합니다. 하지만 아테네와 스파르타는 이 제안을 거절했고, 이에 분노한 다리우스 대제는 대규모의 병력을 동원하여 정벌을 꾀합니다. 먼저 침공을 받게 된 아테네는 달리기에 뛰어난 재능을 가진 필리피데스라는 병사를 스파르타에 보내 원군을 보내줄 것을 요청합니다. 그러나 스파르타는 종교적인 이유를 내세워 거절을 했고, 위급해진 아테네는 지략과 전술이 뛰어난 밀티아데스 장군을 앞세워 페르시아와 한 판 전쟁을 벌입니다. 이때 이들이 싸운 장소가 아테네에서 동북방으로 대략 40km 떨어진 마라톤 평원이었지요.

마라톤 평원의 전투에서 전력과 수적 열세 등 불리한 여건을 극복하고 아테네 군대가 페르시아 군대를 물리치고 승리를 하게 됩니다. 이 환희의 승전보를 전하기 위해 스파르타 원군 요청에 사신으로 나섰던 필리피데스라는 병사를 아테네로 보내지요. 장거리를 달리는 그의 탁월한 능력을 또 한번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마라톤 평원부터 아테네까지 40여km 거리를 달려 도착한 그는 군중들에게 둘러싸여 ‘우리는 이겼노라.’ 한 마디 말을 남기고 숨을 거둡니다. 그가 보여준 투철하고 숭고한 정신을 기리기 위해 프랑스의 브레알 교수가 전쟁터의 이름을 따와 마라톤 경기를 창설했고, 나아가 올림픽 종목으로 채택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첫 근대 올림픽 대회는 프랑스의 역사학자 쿠베르탱의 제안으로 그리스 아테네에서 1896년 4월 6일부터 15일까지 열렸습니다. 14개국 241명의 선수가 참가를 하였는데, 경기는 육상, 수영, 테니스, 체조(역도 포함), 레슬링, 사이클, 펜싱, 요트, 사격 등 9개 종목(세부 종목은 43개)이었습니다.

이렇게 시작한 마라톤 대회는 제1회 아테네 올림픽에서 40km(실측 결과 36.75km였음)를 달렸고, 제2회 파리 올림픽에서는 40.26km를 달리는 등 대회 때마다 거리가 조금씩 달랐습니다. 혼란스런 문제를 해결하고 일관성을 갖기 위해 국제육상연맹 아브라함 위원장은 회의를 주관하여 마라톤 거리를 42km로 확정합니다.
 
그럼에도 1904년 제4회 런던 올림픽 대회 때 거리는 42.195km였는데 사유는 이렇습니다. 주경기장인 화이트시티 스타디움에서 출발, 런던 시내의 쉐퍼즈부쉬 경기장의 귀빈석(로열박스)까지 42km 코스를 정했는데, 스포츠를 매우 좋아했던 영국왕 에드워드7세가 출발 장면을 직접 보고 싶다 하여 윈저 궁 황실 육아실 앞으로 출발점을 늘렸던 것입니다. 이렇게 하여 처음 계획한 곳에서 195m가 더 늘어나게 되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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