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역사 속으로 사라진 사법시험제도. 수년 전 사법시험 면접시험에서 면접관이 수험생에게 물었다고 한다. “물권과 채권의 차이에 대해 설명해 보라.”

이 수험생은 당황해서인지, 아니면 면접에서 떨어뜨린 예가 없다는 것을 익히 알고 면접관의 질문을 소홀히 대한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필자에겐 지어낸 우스개라고 밖에는 여겨지지 않는다. 사인간의 권리의무를 규율하는 민법 수험서를 일만 페이지 이상 탐독하였을 수험생이 물권과 채권으로 대별되는 권리의 개념을 모를 리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상생활 속에서 부지불식간에 수많은 법률관계를 맺고 사는 일반인은 이를 무척 어려워하는 경우가 많다.

물권(物權)은 글자 그대로 물건에 대한 권리이다. 물건은 권리의무의 주체인 인(人, 자연인과 법인)에 대비되는 것으로 ‘권리의무의 객체가 되는 것’ 전부를 통칭한다. 물건의 대표적인 분류방식이 동산과 부동산이다.

주택에 대한 소유권을 생각해보자. 주택이라는 물건을 배타적으로 사용・수익・처분할 수 있는 완전한 물권, 이것이 소유권이다. 이 세상 모든 사람, 그 누구에게라도 그 주택이 내 것임을 주장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 주택이 나의 것임이 외부에 공시되어야 한다. 이것이 등기제도이다.

미등기 상태에서는 이러한 소유권은 발생하지 않는다. 누군가에게서 주택을 매수하였다면 그에게 등기를 넘겨달라고 청구할 수 있는 권리, 즉 소유권이전등기청구권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위 청구권은 채권이다. 채권은 물건에 대한 권리가 아니라, 특정인에 대하여 특정행위를 구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소유권을 넘겨달라고 요구할 권리, 돈을 달라고 요구할 권리 등. 채권은 계약자유의 원칙에 따라 당사자의 합의에 의해 얼마든지 만들어 질 수 있다.

민법은 그 무수한 계약 중 매매, 교환, 증여 등 14가지 전형계약을 규율하고 있다. 채권자는 물권자를 이길 수 없다. 이를 대항하지 못한다는 말로 쓰인다. 예컨대, 주택 매수인이 계약금과 중도금만 지급한 상태에서 매도인이 제3자에게 이중으로 매도하여 그에게 소유권이전등기를 마쳐준 경우를 생각해보자. 제1매수인은 등기까지 마친 제2매수인에게 ‘내가 먼저 매수하여 계약금과 중도금까지 지급하였으니 나에게 소유권이 있다’고 말할 수 없다. 소유권을 넘겨달라는 권리는 매매계약의 당사자인 매도인에게 대해서만 주장할 수 있는 채권이기 때문이다. 매도인의 소유권이전등기의무가 이행되지 못한 책임을 물어 그에게 계약을 해제하고 손해배상을 구할 수 있을 따름이다.

채권은 특정인에 대해 특정행위를 구하는 권리, 소유권으로 대표되는 물권은 물건에 대한 배타적 지배권이라는 것은 이러한 것을 의미한다. 추후 민사분쟁을 다루는 여러 글에서 또 다시 등장하게 될 것이다.

한편, 위 수험생 일화가 사실이라면, 사회정의와 인권을 옹호할 사명감을 가진 법조인이 되겠다는 각오보다는 밝은 성격과 충성심으로 어필하려는 회사취업 면접쯤으로 여긴 것은 아닐까라는 씁쓸한 생각이 든다.
                     

저작권자 © 뉴스사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