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는 사천] <남아있는 나날>

▲ 「남아있는 나날」가즈오 이시구로 지음 / 민음사 / 1989

영국의 달링턴 홀의 집사 스티븐스는 자신이 존경해마지 않는 달링턴 경을 섬기며 자신의 직업에 대한 자부심과 강박적인 의식을 가지며 살아간다.

 자신이 갈망하는 ‘품위’ 있는 위대한 집사가 되기 위해 친부의 임종을 지키는 것을 포기했고 미묘한 감정을 가진 동료 켄턴 양을 떠나보냈지만 “사적인 실존을 위해 전문가적 실존을 포기하지 않았다.” 며 성취감마저 느낀다. 그에게 있어 직업에 대한 품위라는 것은 그런 것이다.

30년이 지나 새로운 미국인 주인의 제의로 과거의 동료 켄턴 양을 만나기 위하여 떠난 여행에서 스티븐스는 과거를 회상하며 자신의 행동들에 당위성을 부여한다. 여행에서 만나는 마을 사람들이 그를 귀족이라 여기는 추측을 굳이 부정하지 않음으로써 달링턴경과 자신을 동일시하지만 사실은 동정심 많은 주인이 히틀러의 지지자였다는 현실의 비난에 “오늘날 나리의 삶과 업적이 헛수고쯤으로 여겨진다 해도 내 탓이라고는 살 수 없다.” 는 이중성을 드러낸다.

여행의 끝에서 켄턴 양을 만나고 공허한 마음으로 찾아간 바닷가에서 새 주인과의 관계를 개선시키고자 다짐하는 장면은 우리에게 실소가 나오게끔 한다. 스티븐스에게 부족했던 것은 농담실력이나 유머가 아닌 사태 인식능력이라는 것을 그는 깨달았을까.

그러나 바닷가의 저녁이 찬란하게 아름답듯이 인생의 황혼기인 지금부터라도 중요한 ‘남아있는 나날’ 을 더 이상은 ‘시치미 떼지 않고’ 똑바로 보고 살아야 한다는 것을. 작가는 말한다.

2017년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이기도 한 가즈오 이시구로의 책 <남아있는 나날>은 결국 인간은 자신의 생각과 여정에 대한 책임을 져야하고, 인간으로서의 품위에 대한 성찰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며 독자인 나의 삶을 돌아보게 만드는 힘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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