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로 되살아나는 6월의 풍경 <19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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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 되살아나는 6월의 풍경 <1987>
  • 배선한 객원기자
  • 승인 2018.01.03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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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선한의 영화이야기
▲ 영화 포스터.

시대를 기억하는 방식은 제각각이다. 처절하고 뜨거웠던 그 날도 어느 누구에게는 그저 학교에 가지 않고 놀 수 있는 뜻밖의 휴식일로 기억될 수도 있었다.

중학교 3학년 때였다. 선생님께서 내일 하루 휴교한다며 아무데도 나가지 말고 집에만 있으라고 신신당부를 하셨다. 그날이 1987년 6월 26일이었다. 서면, 남포동, 보수동 로터리에 연일 수천, 수만 명이 나와서 시위를 하지만 부산의 변두리 동네에서 걸어서 통학하던 아이는 민주화의 격랑이 무엇인지는 전혀 모르고 살았다.

물론 교차로 구석구석에 포진해 있던 전경들과 일명 닭장차들이 조성하던 공포분위기는 체감했지만, 왜 사람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야만 했는지 그들이 간절하게 울부짖던 “호헌 철폐, 독재 타도!”라는 구호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조차 알지 못했다.

참으로 이상한 청개구리 심보라, 회수권 한 장도 아까워하던 시절에 변두리에서 놀기에도 바빴던 어린 청춘이 아무데도 나가지 말라던 선생님의 말씀을 뒤집고 뜬금없이 버스를 타고 나섰다. 역사의 현장을 지켜보겠다는 마음은 전혀 없었다.

그저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궁금함이 3이었다면, 지금의 시티투어 관광객처럼 일주 버스를 타고 부산 시내를 한 바퀴 돌아보려는 마음이 7이었다. 버스종점에서 가까운 한적한 동네라 별 다른 일은 없었다. 그러다 나지막한 주택들이 높은 빌딩으로 바뀌는 교차로부터 버스는 굼벵이 걸음을 하기 시작했다. 차가 다녀야 할 도로가 남녀노소 사람들로 빼곡했고, 그들의 옷차림은 와이셔츠부터 기름때 가득한 작업복까지 일관성이 없었다. 차창 밖의 사람들은 어깨에 어깨를 견 채 입가에 두른 손수건 한 장으로 매캐한 최루탄 연기를 뚫었고, 그것은 TV나 뉴스에서는 볼 수 없는 풍경이었다.

<1987>은 박종철 열사의 고문치사사건을 은폐하려는 박 처장(김윤석)을 중심으로 엄혹했던 그 시절의 역사를 다양한 시선에서 비교적 담담하게 그렸다. 하지만 ‘애국자’와 ‘빨갱이’라는 하나의 프레임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당했던가. 그렇게 모진 세월을 견디고 치열하게 싸워서 6월 항쟁이 승리를 이끌어내기까지 얼마나 많은 이름 모를 이들의 헌신이 있었겠는가. <1987>은 모두가 뜨거웠던 그해를 되새기는 영화다. 광장으로 모여들었던 사람들은 30년 후 촛불을 든 채 또 다시 광장으로 모였고, 마침내 2017년 3월에는 독재자의 딸을 권좌에서 끌어내렸다. 이 영화의 영문제목이 <1987:When the Day Comes, 2017>인 이유는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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