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천 현대 지성의 시작’이라 해도 아깝지 않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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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천 현대 지성의 시작’이라 해도 아깝지 않을
  • 이은식 문학박사(경남문화재 전문위원)
  • 승인 2017.11.22 09:38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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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 사천을 빛낸 인물] 효당(曉堂) 최범술 ①
효당 최범술이 13세에 출가해 불교에 귀의한 곤명면 다솔사.

13세에 출가해 다솔사에서 스님의 길 시작
16세에 독립선언서 배포하다 고초 받기도
허백련 등과 교유하며 차(茶)문화 정립 업적
효당 만큼 사천 문화 발전시킨 이 또 있을까

사천출신 1호 대학생, 국회의원, 해인사주지, 해인대학장, 다도의 명인, 독립운동가.
이상이 효당 최범술의 행적을 엿볼 수 있는 직함 내지는 약력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인문학의 현상들에서 매우 소중하고 가치 있다고 평가하는 삶의 행적을 거쳐 온 효당 최범술은 1904년 서포에서 출생하였다. 어릴 때 이름은 최영환이었다. 법호가 효당(曉堂)이고 광복이후에 범술(凡述)이라는 이름을 사용했다.

12살 되던 1915년에 곤양보통학교를 졸업하고, 13세에 다솔사에 들어가서 불교생활을 시작하였고, 14살 되던 1917년에 해인사로 들어갔다. 그곳에서 독립선언서를 등사하여 배포하다가 일제 경찰에 체포되어 고초를 받기도 하였다. 젊었다고 하기도 힘든 어린 소년시기였다.

▲ 효당 최범술.(사진=뉴스사천 DB)

필자의 청년기 대학시절, 다솔사에 최범술이라는 스님이 계시고, 그의 학덕이나 인품이 고매하다는 얘기를 들었다. 또, 다솔사가 차로서 유명한데, 그 이유는 최범술 스님이 그곳에 계시기 때문이라는 얘기도 주변에서 듣고 살았다. 해서 늘 그분을 먼발치에서라도 만나보고 싶었고, 스쳐지나가면서라도 만나서 어떤 모습의 사람인지라도 알고 싶었다.

그러나 그런 기회는 아무런 연고도, 지식도, 학식도 없는 나에게는 끝까지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다가 대학원에서 국문학을 공부할 때, 1930년대 다솔사와 문학인들, 광복을 위해 노력하는 분들의 이야기를 다시 흘려듣기 시작하고, 자료를 접하게 되고, 논문도 읽어보게 되었다. 고등학교 국어교사시절, 문학수업에서 김동리의 『등신불』을 수업할 때는 그렇게 신이나지 않을 수 없었다.

“등신불의 공간적 배경은 실제로, 사천 다솔사와 그 주변 사찰을 배경으로 시작된단다. 작가 김동리도 1930년대 사천에서 야학을 하고 있으면서, 많은 소설의 소재를 사천에서 구상했다.”
 
나는 스스로 감동하면서 수업을 시작하곤 하였다. 그러나 그때도 『등신불』 작품 주인공이 대정대학에 다녔다는 내용은 실제로, 최범술 스님이 1922년에 일본으로 건너가 대정대학을 다녔다는 사실을 소재로 하였는지는 몰랐다. 만약 그때 알았더라면 또 얼마나 스스로 감격하여 문학수업을 정신없게 떠들어대었을지 모를 일이다.

효당이 사천출신 대학생 1호라는 사실은 실제로는 그것만으로 중요하지는 않다. 단지 이로 인하여 사천에 어떤 촉매가 되었는지가 더 사천의 문화에 중요한 일이 될 수 있다. 그 당시 서울로 대학을 진학한다는 일만으로도 대단히 떠들썩한 일인데, 일본 유학이라는 일은 분명 선망의 대상이었다. 개인의 재능과 재력과 환경이 특별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그는 그 후 얼마나 많은 사천문화에 밝은 촉매제가 되었을까?

사천은 나름 차와 차그릇으로 이름을 떨친다. 남해안에서 보면, 전남보성, 경남 하동이 차로 유명하고, 인물로는 초의선사, 허백련 등을 꼽을 수 있다. 효당은 그런 분들과도 연관이 깊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집안에서 차와 관련이 깊은 일상이 있었다고 한다. 효당으로 인하여 오늘날 사천의 차가 명차의 지역으로 명분을 쌓아갈 수 있을까? 승려로서 학승으로서 얼마만큼 불교에 업적을 쌓았을까?

나는 사천의 인물을 매월 연재하면서 이번 연재가 매우 조심스럽다. 지금껏 연재한 인물들은 고려, 조선조 인물이라서 현대인과 격리감을 주어 비판적이거나 적극적인 관심보다 관조적인 관심을 가질 수 있으나 효당 최범술이라고 말하면, 사천의 많은 분들이 효당을 기억하되 승려로, 정치인으로, 교육자로, 여러 방면에서 직·간접적으로 알고 평가하여 온 탓이다.

그를 혹 비평이 아닌 비판을 하는 장으로 만들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있다. 그는 자신이 비판한 일로 스스로 비판을 당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사천의 문화사에서 그만큼 사천의 문화를 다양하게 발전시킨 사람으로 평가된 사람은 아직 없다. 한편으론 효당의 평가로 인하여 앞으로 어떤 평가 준거가 일어나기를 바란다. 다음 호에서는 효당 최범술에 대한 더 자세한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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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룡산 현담 2017-11-25 11:46:54
이박사님.
사천의 인물, 문화사를 재조명하므로써 사천인에게 자긍심을 심어주고, 대내외에 사천을 널리 알리어 사천발전에 일조하심에 수고가 많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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