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선한의 영화이야기

▲ 영화 포스터.

역대 한국영화 중 여배우 원톱 작품은 몇 편 되지 않는다. 기본적으로는 흥행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 제작 상 가장 큰 난맥이며, 또 하나는 그럴 역량을 갖춘 배우가 거의 없다는 것이다. 말장난이기는 하지만 ‘거의’라는 말에는 완전 배제를 뜻하지 않는다. 김혜수라는 배우가 바로 출연 자체로 관객을 끌어들일 티켓파워가 있고 역량이 있다.

“느와르 영화에는 매력적인 남자 캐릭터는 많이 나오는데 여성 캐릭터는 팜므 파탈 혹은 톰보이 캐릭터로 사라지는 걸 보면서 이를 메인 플롯으로 가지고 와보고 싶었다”던 이안규 감독의 말에는 백번 공감한다. 김혜수라는 배우가 그 기대를 부응할 수 있으리라는 점에도 이의가 없다. 그렇게 탄생한 <미옥>은 김혜수를 위한 영화라고 해도 무방하다. 실제로 은발에 장총을 겨누는 그녀의 모습은 그 어떤 영화의 여성전사보다 아름다웠다. 오랜만에 심장이 뛰고 가슴이 설렜다. 정말 멋진 연기를 선보여서가 아니다. 장장 한 시간 삼십 분에 달하는 장편 영상화보를 보았기 때문이다. 그렇다. <미옥>은 감독의 야심찬 포부와는 달리 산으로만 달려가는 망작이 되고 말았다.

이제는 조직을 정리하고 은퇴준비를 하는 언더보스 ‘나현정’, 언제나 그녀만 바라보며 곁을 지키는 남자 그리고 그녀를 잡아들이겠다는 검사. 느와르 구성으로 적당한 삼각구도다. 이제 양념만 잘 치면 잘 차린 한상이 될 텐데, 그 양념이 처참무인지경이다. 느와르라고 강조한 바가 있으니 일단 폭력은 사정없이 난무하고 에로무비를 능가하는 정사씬은 보너스처럼 따라붙는다. 이 청불영화인 만큼 뭐 그럴 수 있다 치고, 세 사람의 갈등을 고조시키는 클리셰라고 등장하는 게 출생의 비밀과 저열한 질투가 전부다.

캐릭터 구축도 제대로 못했다. 모두 다 엉망이지만, 그 중에 영화의 제목이자 타이틀롤인 ‘미옥’조차 본명을 버리고 ‘나현정’이라는 이름을 쓰게 된 이유를 제대로 알려주지 못한다. 여자 주인공이기에 당연하다는 건지 그저 아들을 위해서 목숨을 버리는 모성애만 강조할 뿐이다. 차라리 자신의 생존을 위해 모성애마저 저버리는 것이 느와르와 어울리지 않았을까.

그동안 한국 영화에서 여성 느와르를 표방하며 적지 않은 수의 영화들이 명멸했으나 매번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음이 사실이다. 그리고 <미옥> 역시 불운했던 여성 느와르의 선험을 증명하듯 김혜수 빼면 아무 것도 아닌 기초공사 허술한 부실 건축물 같은 영화로 남았다. 그나마 이 부실을 김혜수를 비롯한 배우들이 끌어안고 고군분투하다 마무리하는 형색이다. 그래도 위로가 된다면 세월이 흘러도 꿈쩍도 하지 않는 김혜수의 아우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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