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취재] 사천의 도시재생 어떻게 할까?
① ‘역전(驛前)의 역전(逆轉)’ 외치는 영주시 사례

▲ 영주시 도시재생사업 대상지 중 하나인 후생시장 전경.

도시의 급속한 성장과 신시가지 중심 개발에 밀려 쇠락해진 원도심. 여기에 활력을 다시 불어넣으려는 시도가 도시재생사업이란 이름으로 진행되고 있다. 문재인 정부 들어 이에 대한 지원을 크게 늘린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전국의 모든 지자체들이 이 사업을 더 주목하는 분위기다. 사천시도 예외가 아니다. 그러나 도시재생이 그리 쉽지만은 않음이 먼저 시도하고 있는 지자체들 경험에서 드러나고 있다. 이에 뉴스사천은 다른 지자체의 앞선 노력을 살피고 사천에 알맞은 도시재생사업의 방향을 모색해본다.   - 편집자 주

국토교통부가 2014년에 도시재생선도지역으로 지정한 13곳 중 하나 경북 영주시. 도시의 핵심역량을 강화하는 도시경제기반형과 쇠퇴한 상업지역이나 노후 주거지역을 재생하는 근린재생형, 두 가지 유형 중 근린재생형에 해당한다. 국비와 시비 100억 원 씩 총 200억 원이 2015년부터 올해까지 나눠 지원되고 있다.

영주시 도시재생사업을 간단히 표현하면 ‘역전(驛前)의 역전(逆轉)’이다. 1942년 중앙선 개통으로 형성된 이른바 영주역 역세권이 도시의 중심기능을 수행했으나, 1961년 발생한 대형 수해와 그로 인한 1973년 영주역 이전을 계기로 점점 그 기능을 상실한 옛 영주역 주변에 다시 활력을 불어넣는 것이 핵심이다. 이 사업은 다시 장소에 따라 크게 세 개로 나눌 수 있는데, 후생시장권역, 중앙시장권역, 구성마을권역이다.

이 가운데 후생시장권역부터 살펴보자. 후생시장은 1955년 개장한 뒤 한때 고추 유통 시장으로 이름을 떨쳤으나 고추시장의 도심외곽 이전 등 환경변화로 시장 기능을 거의 잃은 곳이다.

▲ 영주시 도시재생사업 대상지 중 하나인 중앙시장 전경.

이곳의 도시재생은 근대 경관 복원에 초점을 맞췄다. 시장 내 건축물과 점포의 대부분이 30년 이상 된 데 착안해 근대목조한옥상가로 외관을 꾸미고, 가족단위의 지역주민이나 관광객이 여러 가지 문화체험을 할 수 있게 했다. 오래된 여인숙을 개조한 게스트하우스, 학생들이 참여하는 ‘황금시대’ 라디오방송국, 인형극장, 근대역사체험관, 군것질거리, 고향사진관, 골목오락실 등이 그 내용이다. 취재 시점인 10월 말 현재, 조성 막바지 단계로 본격적인 출발을 앞두고 있다.

▲ 청소년들이 운영하는 황금시대 방송국.

이 가운데 유난히 눈길을 끈 것은 라디오방송국과 인형극장이다. 라디오방송국은 낡고 늙은 느낌의 후생시장에 청소년들의 생기발랄함을 끌어들이는 뜻에서 기획됐다. 영주교육지원청의 협조 아래 구성된 영주도시재생청소년지원단이 라디오방송을 제작해 송출하는 사업이다. ‘황금시대’ 방송국은 학생들이 직접 프로듀서, 작가, 엔지니어 등을 맡아 운영하며, 제작 프로그램은 영남방송과 영주FM을 통해 송출한다. 고등학생 주축으로 구성된 골목교육봉사단은 초등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육활동도 벌이는데, 이 역시 후생시장을 더욱 젊게 만드는 한 요소다.

인형극장은 지역 문화예술단체와 관심 있는 개인들의 참여로 운영된다. 주중 또는 주말에 상설공연을 펼치고, 인형극 교육을 통해 청소년과 지역민들의 예술 활동을 지원한다. 그밖에 근대생활문화전, 옛날학교전 등 문화기획사업과 예술문화아카데미 등을 계획하고 있다.

중앙시장권역의 중앙시장은 영주역이 이전하고 남은 자리에 1982년에 들어선, 비교적 젊은 시장이다. 하지만 이미 도시의 중심기능을 잃은 상태에서 상권 확보에 실패했고, 도시재생사업 직전엔 절반 이상의 점포가 비어 어려움이 컸다.

이곳에 대한 도시재생전략은 ‘청년 창업 활성화’로 요약된다. 시장의 빈 점포를 매입해 청년 창작공간으로 지원했는데, 현재 규방, 목공, 매듭, 민화, 압화, 초크아트, 캔들, 한지 등 8개 부문 공예가들이 입주해 있다. 이들은 창작 공방을 운영하는 동시에 지역주민과 상인들이 참여하는 동아리(=팔팔한공예동아리)를 만들어 풀뿌리 문화예술활동을 병행하고 있다.

▲ 후생시장에 있는 인형극장.

청년창작공예공동체 ‘모디(MODI)’를 결성한 이들 공예가들은 시민과 시장상인을 상대로 다양한 문화예술교육 활동을 펼침으로써 중앙시장을 ‘문화형 시장’으로 새롭게 발돋움시키리라 꿈꾸고 있다.

‘ㅁ’자 형 건물로 구성된 중앙시장은 옥상에 음악연습실, 실내게임장, 휴게쉼터, 캠핑장 등을 갖추었고, 기존 지하상가를 모두 매입해 만든 지하주차장도 확보하고 있다. 중정에 해당하는 시장 안마당에서는 주말이면 시장 상인들과 ‘모디’ 회원, 그 외 지역 문화예술인들이 참여하는 작은 축제나 야시장이 펼쳐져 재미를 더한다.

▲ 사회적협동조합으로 구성된 할매묵공장에서 묵을 생산하는 ‘할매’조합원들.

구성마을권역 도시재생의 주인공은 ‘할매’와 ‘할배’들이다. 1961년 영주 대홍수 이후 피난민들에 의해 형성된 무허가 정착촌이었던 구성마을은 오랫동안 낙후된 채였다. 마을 구성원들도 대부분 노인들인 데다 독거노인 비율이 42%에 이르렀다.

무료한 나날을 보내던 이들에게 도시재생사업은 없던 힘을 솟아나게 했다. 먼저 팔을 걷어붙인 쪽은 ‘할매’들이다. 노령의 주민들이 직접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까 고민하던 그들은 메밀묵을 떠올렸다. ‘예전부터 늘 하던 일이니 잘할 수 있지 않을까’ 여긴 것이다.

이들은 영주시도지재생지원센터의 도움을 받아 사회적협동조합 형태로 마을기업을 만들었다. 여기에는 16명의 여성 주민이 참여했는데, 현재 평균 나이는 76세다. 이 ‘할매’들은 2016년 7월에 들어선 할매묵공장을 기반으로 올해 초부터 묵 시장 공략에 나섰다. ‘할매묵’이란 상징과 그 사업 배경이 눈길을 끌면서 제법 시장을 넓히고 있다는 게 지원센터의 설명이다.

▲ 할매묵공장에서 생산한 묵과 두부 판매 현장.

할매묵공장을 이끌고 있는 권분자(67) 이사장은 “옛날엔 모여서 윷놀이나 화투놀이만 했는데 지금은 일자리가 생겨 모두 의욕이 넘친다”며 도시재생사업 시작 이래 마을에 큰 변화가 있음을 강조했다.

‘할매’들이 묵으로 관심을 불러일으키자 이에 자극 받은 ‘할배’들은 할배목공소로 도전을 시작했다. 이들은 도마 등 생활도구를 만드는 것에서 집수리까지 아우르고 있다. 그 틀은 역시 사회적협동조합으로, 8명이 참여한다.

구성마을권역사업에는 이밖에 구성공원 조성, 게스트하우스‧커피숍‧빨래방 운영 등이 포함돼 있다.

▲ 구성마을의 할배목공소에서 생산된 제품들.

영주시의 도시재생사업은 각종 평가에서 우수사례로 꼽힐 만큼 13개 선도지역 가운데서도 특히 주목받는다. 최근 할매묵공장과 할배목공소가 2017년 마을기업 박람회 및 공동체 우수사례 경진대회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한 것도 그 한 예다. 그렇다면 무엇이 영주시 도시재생사업을 빛나게 하고 있을까?

이에 대한 답이 여럿 있겠지만 오랫동안 영주시 도시재생사업을 지켜보고 심층보도 해온 영주시민신문의 김은아 기자는 영주시도시재생지원센터의 역할을 꼽았다. 그는 “보통 도시재생사업의 성공 여부가 주민들의 참여 정도에 달렸다지만 그 참여를 이끌어내는 중심 역할은 도시재생지원센터에 있다”며 “다른 지역의 경우 센터장이 교체되거나 지자체 입김에 따라 사업이 쉽게 흔들리는 경향이 있는데, 영주는 지자체가 예산지원 실무를 맡으면서도 센터장과 사무국에 힘을 실어줬다”고 말했다.

실제로 영주시의 경우 도시과에 도시재생팀을 두어 각종 도시재생 업무를 전담하게 했다. 반면 민간 전문가나 활동가로 구성된 도시재생지원센터의 경우 센터장 책임 아래 자율성과 일관성을 유지했다.

동양대학교 명예교수이면서 영주시도시재생지원센터장을 맡고 있는 이도선 센터장도 같은 맥락으로 분석했다. 그는 “박자가 잘 맞았다”며 “행정과 중간조직, 주민들 사이에 소통이 도시재생사업의 생명”이라고 말했다. 이어 “재정이 지원되는 특성상 주민들의 욕심이 과할 수도 있고, 지자체장이 이래라 저래라 간섭할 수도 있는데, 그러지 않았다”고 밝혔다.

김은아 기자가 밝힌 영주 도시재생의 두 번째 포인트는 주민교육과 주민 지도자의 발굴이다. 그는 “도시재생대학을 통해 미리 주민 이해를 높여야겠으나 그것만으론 부족하다. 뛰어난 주민 지도자가 있어야 한다. 대표적 사례가 할매묵공장의 권분자 이사장”이라며, “구성마을이 활기를 띠면서 다른 권역사업 주민들에게도 자극이 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본 취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지원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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