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선한의 영화이야기]

영화 포스터.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에서 어중간한 포지션을 차지한 캐릭터를 고르라고 한다면, 아마도 모든 손가락이 일제히 한쪽으로 모일 것이다. 바로 천둥의 신 토르. 명색은 천둥의 신인데 하는 거라고는 망치 묠니르를 휘두르는 게 전부인 근육질 전사였으니 말이다. 심지어 북유럽신화를 차용한 이유가 로키나 띄워주기 위해서였나는 소리까지 들었다. 그렇게 오욕(?)의 세월을 버틴 덕분인지 어중된 토르가 마침내 주인공으로서 자리를 잡았다. <토르: 라그나로크>의 성과는 토르가 어벤저스 세계관에서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됐다는 데 있을 것이다.

달리 생각해보면 낭비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비효율적이다. 2011년에 <토르: 천둥의 신>으로 시작해서 2013년에 <토르: 다크 월드>를 거쳐 무려 7년 만에야 제자리를 찾았으니 말이다. 매력적인 북유럽 신화 출신 캐릭터임에도 토르보다는 로키가 더 사랑받았(아직도 토르가 무슨 역할을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심지어 <어벤저스>에서도 토르의 활약보다 헐크에게 사정없이 내동댕이치는 장면(<토르: 라그나로크>에서는 이 장면도 훌륭하게 써먹더라)으로 로키가 더 주목받았으니 말이다. 아무튼 낭비든 뭐든 주인공의 반열에 접어들었으니 제대로만 활약했으면 좋겠다.

최근 MCU의 경향이 조금 무거워졌다는 평가는 있었다. 예컨대 <시빌워>에서 ‘초인등록법’으로 야기된 슈퍼히어로간의 충돌-이데올로기의 충돌은, 그 목적이 관객동원을 위해서라고 하지만 살짝 무겁게 다가오기는 한다. 그래서일까, 이번에는 그야말로 한없이 가볍다. 물론 라그나로크가 ‘신들의 몰락’ ‘최후의 전쟁’을 뜻하는 만큼 심각한 분위기는 잡지만, 곳곳에 암초처럼 도사린 유머가 굳이 장엄할 필요가 있느냐고 항변을 한다. 사실 팝콘무비의 역할은 여기까지만 해도 충분하다. 심오한 주제를 탑재했다면 당연히 좋지만, 그저 처음부터 끝까지 신나게 웃다가 어두운 극장문을 나서는 순간 훌훌 털어버릴 수 있는 것도 좋지 않은가. 한없이 무겁고 어둡게만 만드는 통에 재정 상태까지 어두워진 DC의 사례와 비교하자면, 마블은 그저 신나게 즐기고 웃게만 해줘도 좋겠다.

요즘은 극장에 가기 전 해당영화의 사전정보를 알고 가기 때문에 쿠키영상을 놓치는 사례는 거의 없는 편이다. 쿠키영상이 큰 역할을 하는 건 아니어서 안 봐도 무방하지만 준비된 서비스를 굳이 걷어찰 필요는 없으니, <토르: 라그나로크>의 말미에 있는 두 개의 쿠키도 엉덩이 진득하게 붙이고 있다가 보고 나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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