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암 연구로 사천 인문학 다시 꽃피우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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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암 연구로 사천 인문학 다시 꽃피우길
  • 이은식 문학박사(경남문화재 전문위원)
  • 승인 2017.11.01 10: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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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 사천을 빛낸 인물] 구암(龜巖) 이정(李楨) ②
▲ 구암제 한시 백일장에 참가한 전국의 유림들이 시를 짓고 있다. (사진=뉴스사천 DB)

#스승은 관포 어득강·규암 송인수

구암은 사천에서 관포 어득강, 규암 송인수 등을 스승으로 모시며 학문과 사상을 쌓아 갔다. 구암은 어린 시절에도 관포에게 내왕했으니, 그때부터 관포의 시적 문학이 어느 정도 영향을 주었는지 짐작 할 수 있는 일이고, 규암의 영향도 상당했을 것이다. 구암학술세미나 등으로 제법 구암에 대한 연구가 속도가 붙었으니 앞으로 조선유학사에 구암은 상당한 연구과제로 남아 있다.

규암과 구암과의 관계를 살피는 실마리의 하나로 대관대중수기를 꼽을 수 있다. 구계서원에 대관대중수기 비가 세워져 있는데, 이는 1901년 연재 송병선 순국지사가 지은 글이다. 그는 규암으로 시작된 은진 송 씨와 구암과의 인연을 중히 여긴다고 하며 이 글을 지었다.

송병선(宋秉璿)이 누구인가? 1836년에 출생한 그는 공조참판, 대사헌에 임명되었으나 벼슬에 나아가지 않고 고향에서 학문과 교육에 전념하였으며, 1905년 을사늑약을 막고 나라를 구하려다 결국 순국을 선택한 인물이다. 자는 화옥(華玉). 호는 연재(淵齋) 또는 동방일사(東方一士)로 우암 송시열의 후손이다.

#학문과 정치로 뛰어났던 구암

구암은 학문과 정치로 매우 뛰어난 인물이었다. 특히 조선의 유학을 널리 펴기 위해 성리학 서적을 많이 출간하였는데, 조선조 어느 학자가 출간한 서적보다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뛰어나다. 당시엔 서적이 너무 빈약하여 말로만 전해 들으며 유학을 공부할 정도였는데, 구암이 이를 일소해 버렸다. 이때 출간한 서적을 여기에 소개한다면 상당한 지면을 할애하겠지만, 이 칼럼은 전문연구가를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서 그 상세함을 생략한다.

그렇지만, 올해, 사천시에서는 구암을 높이 평가만 할 것이 아니라 구암을 연구하고 총 정리하는 장을 열어 주었다. <구암총서>를 발간하는 작업을 시작한 것이다. 구암이 편찬한 서적, 역사적 자료, 조선조 구암과 연관된 정치‧경제‧사회‧문화를 총 망라하여 구암총서를 편찬하기로 기획하고 올해부터 5개년을 목표로 진행하고 있다. 이미 지금껏 알려지지 못한 구암의 행적과 서적을 발견하기 시작했고, 한 대학은 그의 학문을 연구하는 강좌를 개설하기에 이르렀다. 영남과 호남의 대학이 공동연구도 진행하고 있다.

#영호남 하나로 묶는 구암 연구

구암이 퇴계에게 권한 서적들이 만만하지 않고 퇴계가 구암에게 부탁한 서적도 만만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대단한 인물이 어째서 조선 역사에서 크게 이름이 나지 못했을까? 그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큰 원인은 제자가 어떠했는가에 있다.

남명과 퇴계는 큰 유학자임에 틀림이 없다. 그런데 남명의 제자들은 이후 크게 이름을 떨친 데 비해 구암의 제자들은 그러지 못했다. 게다가 구암은 한창 학문이 성숙될 나이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구암이 병이 깊어가자 ‘몇 년 만 더 삶을 연장할 수 있으면 학문의 집필을 마칠 수 있을 것인데’라는 아쉬움을 토로한 부분을 보면 안타까움이 많이 남는다.

구암은 영호남의 학자들을 두루 교유하였다. 비록, 오늘날 영호남의 골이 정치에 의해 깊어지게 되었지만, 구암으로 인하여 학문의 소통과 문화교류는 차근차근 진행되고 있다. 구암이 순천부사로 갔을 때, 고봉 기대승 등 호남의 학자들과 친분이 깊어서 성리학에 많은 업적을 더불어 남길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 부분도 <구암총서>에서 영호남의 학자들이 머리를 맞대고 연구를 시작할 것이다.

▲ 구계서원 춘향제례를 지내는 모습. (사진=뉴스사천 DB)

#다시 구암을 이야기하자

서원은 사당, 공부하는 강당, 동재‧서재로 부르는 기숙사, 서적을 보관하는 장판각 등의 건물을 기본으로 구성된다. 사당에는 서원을 대표하는 인물이 배향되어 있다. 구계서원에는 구암선생을 주향으로, 퇴계선생, 김덕함 선생을 배향으로, 최관선생을 종향으로 모시고 있다. 서원의 중심이 되는 인물을 주향이라고 하고, 더불어 모시는 인물을 배향이라 하고, 한 등급 낮은 분을 모시는 인물을 종향이라고 한다.

향교가 공립학교라면, 서원은 사립으로, 학문을 토론하고 연구하며 학파를 이루는 곳이다.

오늘날 인문학에 대한 관심과 열기가 뜨겁다. 사람의 도리와 삶의 자세를 중시하는 인문학을 다시 중요시하는 일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다. 그러나 텔레비전이나 서점에 불티나게 오르내리는 인문학은 동양의 인문학보다 다분히 서양의 인문학이다. 고대 그리스부터 중세 로마, 근대 유럽의 철학자와 정치가의 삶과 그의 궤적을 우리 현대인은 매우 찬양한다.

그러나 정작 우리 인문학이나 이를 쌓아온 동양의 인물에는 상대적으로 관심이 적다. 한문이 어렵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 한다. 정말 그럴까? 그러면 라틴어는, 불어는, 독일어는, 영어는 현대인에게 쉬운가?

우리는, 특히 우리나라 국민은, 인근 국가인 일본이나 중국에 비해, 자국의 전통문화에 크게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그래서 향교와 서원은 한적하고, 잡초가 자라고 먼지가 켜켜이 쌓여 있다. 구계서원은 사천읍의 가장자리에 위치하고 있어 접근성도 좋지 못하니 오죽이나 한적할까?

사람들은 이름을 부르지 않으면서 사람이 없다고 하고, 인물을 찾지도 않으면서 이끌어줄 사람이 없다고 한탄하고 있다.

올 여름 구계서원에 낡아 없어진 홍살문이 다시 세워졌다. 다시 구암으로 인해 사천이 인문학의 정신을 꽃피우는 지성의 도시가 되기를 간절히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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