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해주 전 사장에게 듣는 ‘KAI 위기 탈출기’

“파벌 심하고 비효율의 극치…좀비기업 같아”
“경영개선에 노사 힘 합치니 수출길도 열려”
“UAE에 T-50 수출 성사 안 돼 무척 아쉬워”

▲ 정해주 KAI 전 사장.

지난주 <하병주가 만난 사람>에서 소개한 정해주 전 KAI 사장을 ‘2017 경남사천항공우주엑스포 특집호’에서 다시 한 번 소개한다. 앞서 최근 어려움에 처한 KAI가 어떻게 위기를 돌파해야 할지 조언을 들었다면, 이번에는 한국항공우주산업㈜ 출범 초기에 겪었던 어려움과 위기극복 과정이 이야기의 중심이다. 그를 만난 것은 10월 12일, 서울에 소재한 대관령풍력주식회사 사무실에서다. 그는 현재 이 회사의 대표이사를 맡고 있지만 항공산업과 KAI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만큼 KAI 전 사장으로 소개한다.

#대표를 맡던 2004년의 KAI 상황은 어땠나요?

=회사 사정이 너무 안 좋아서 누구도 선뜻 사장 맡겠다고 나서지 못하는 상태였죠. 1년 매출이 7000억 원 정도였는데, 부채가 8000억 원이었으니까. 자본도 절반쯤 잠식된 상황이었어요. 부도 직전의 적자기업, 요즘 말하는 좀비기업 수준이었다고나 할까. 그래서 처음엔 ‘(KAI 사장을)못 맡겠다’ 했는데 어쩔 수 없이 맡게 됐어요.

#KAI가 삼성·대우·현대 3사 항공사업을 합친 거라 내부 갈등도 많았다던데...

=1999년 10월에 3사 통합으로 KAI가 만들어졌으니, 내가 사장 맡을 때는 4년 가까이 지났을 때죠. 그때는 파벌도 심했고, 무엇보다 비효율의 극치였습니다. 공장도 따로 있고 노조도 따로 존재했으니. ‘아, 이래선 아무것도 안 되겠다’ 싶어 하나의 회사, ‘싱글 KAI’를 만들어야겠다고 마음먹었죠. 그 첫 조치가 본사를 사천으로 옮기는 거였어요.

#그 과정이 쉽지는 않았을 것 같습니다. 어찌 가능했나요?

= 진심은 통한다고 하지 않던가요? 직원들과 밤늦게까지 소주 마셔가며 소통하려 애썼어요. 설명하고 설득했죠. 그랬더니 되더라고요. 공장도 모으고, 본사도 사천으로 옮기고, 결국 노동조합도 하나로 합해졌죠. 그 과정에 직원 100여 명은 어쩔 수 없이 구조조정 됐습니다.

#당시 사천 지역사회 분위기는?

=지역민들이야 KAI에 상당히 우호적이었죠. 무엇보다 본사를 사천으로 가져온 것에 대해 많이들 고마워했고. 인구가 늘고 경기도 점점 더 활기를 띠었으니 당연한 결과겠죠. 힘들었지만 하나둘 성과를 내니까 개인적으로도 무척 보람 있었어요.

#‘싱글 KAI’는 이뤘는데, 재무구조 개선이란 숙제가 여전히 남지 않았나요?

=그렇죠. ‘싱글 KAI’는 좋은 기업을 만들기 위한 발판이지 최종 목표는 아니었으니까. 먼저 노무현 (전)대통령을 만나 항공산업이 충분히 전망 있다고 설명했어요. 그렇다고 ‘구제금융 달라’ 이런 얘기 한 것은 아니고(웃음)... 다음으로 KAI 주주인 3사 관계자를 만났어요. ‘지금으로선 재무구조 개선이 도저히 안 되니 감자 후 증자토록 해 달라’ 이렇게 설득해 동의를 구했죠. 또 우리에게 받을 돈이 있던 산업은행에는 출자금으로 바꿔줄 것을 요청해 승낙을 받았어요. 최근까지 산업은행이 가졌던 KAI 지분은 그때 형성된 겁니다.

#당시 임직원들도 협조를 많이 했다고 들었는데요.

=물론입니다. 직원들 대상으로 ‘우리 주식 갖기’ 운동을 벌여서 1000억 원을 모았죠. 노조에서는 3년간 임금동결에 동의해주는 등 회사 부담을 덜어줬어요. 그렇게 해서 이리저리 모은 돈이 7000억 원쯤이었데, 이 돈으로 빚부터 갚고 보니까 빚이 1000억 원으로 줄었어요. 결국 부채비율이 800%에서 100%로 줄어든 셈이니, 지금 생각해도 대단한 성과였어요.

#그럼 이렇게 재무구조 개선을 한 다음 수출에 본격 도전한 겁니까?

=그런 셈이에요. 그 전에도 일부 있었지만 솔직히 그 전까진 수출을 꿈꾸기가 쉽지 않았죠. 재무구조를 비롯해 경영 상태가 좋아야 믿음이 생기고 일을 맡길 수 있으니까. 그 전까진 이런 조건을 겨우겨우 만든 거라 봐야죠. 터키에 KT-1을 판매한 것을 비롯해서 노사가 협력해서 열심히 뛰다보니 회사를 그만둘 때쯤 수주잔고가 5조 원이던가? 아마 그쯤이었을 거예요. 영업이익도 200억 원쯤 났으니까, 적자기업이 흑자기업으로 바뀐 거죠. ‘아, 할 만큼 했다!’ 이러고 나왔죠.

#노무현 전 대통령도 KAI와 항공산업에 특히 애정이 많았다고요?

=그랬어요. 항공 비즈니스는 사실 국가 간, 원수 간의 비즈니스라 해도 지나침이 없거든요. 한 번은 중동 순방을 갈 때 동행했는데, 통례를 깨고 사우디아라비아가 아닌 아랍에미리트(UAE)부터 갔어요. 당시 T-50을 UAE에 수출하기 위해 접촉 중이던 우리에게 힘을 실어주려던 뜻이었죠. 한번은 청와대에 들어갈 때 T-50과 KT-1 모형기를 선물한 적 있었는데, 그 뒤로 TV 뉴스에 청와대 대통령 집무실만 나오면 그 모형기들이 배경으로 잡혔어요. KAI와 T-50을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됐어요.

#사장 재임기간에 가장 아쉬웠던 일을 꼽는다면 뭐가 있을까요?

=앞서 언급한 T-50의 UAE 수출 건이죠. 결국 성사시키지 못했거든요. 사실은 계약 직전까지 갔었기에 더욱 아쉬워요. 대통령 순방 때 UAE 왕세제와 만나 1시간 반을 T-50에 관해 얘기했을 뿐 아니라 입찰이 진행되던 중에는 그 왕세제가 KAI 사천공장을 직접 방문해 시설을 두루 살펴봤어요. 입찰 진행 중에 이렇게 하기는 꽤 드문 경우라 항공업계에선 우리가 수주하는 걸 의심하지 않는 분위기였는데, 이듬해 이명박 정부가 들어섰고 저도 임기는 남았지만 KAI를 떠나면서 일이 흐지부지 되고 말았어요. 당시 30여 대의 수출 건이 성사됐다면 T-50 수출 환경은 엄청 달라졌을 겁니다. 많이 아쉬워요.

#그밖에 오늘의 KAI를 위해 도움말을 준다면?(지난 신문에 소개된 질문과 답임)

=KAI는 항공 종합 메이커예요. 잠재력이 대단합니다. 그러니 이 위기만 잘 돌파하면 앞날은 긍정적입니다. 새 사장을 중심으로 분위기를 빨리 추스르고 앞을 보고 가야죠. 현재 능력에 맞춰 ‘스텝 바이 스텝’ 안착해 나가야 합니다. 그리고 미국 고등훈련기 사업이 잘 되면 좋겠지만 그게 아니라도 해외수주 활동을 열심히 해야 해요. 군수가 단속적이라면 민수는 지속적이어서 안정적이죠. 에어버스, 보잉 등 해외 민수분야 일감을 더 많이 가져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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